김재환과 헥터, 그들에게 박수를 보낼 수 없는 이유
▲ 두산 4번타자 김재환과 KIA 에이스 헥터 |
ⓒ 두산 베어스/KIA 타이거즈 |
2016 프로야구가 막바지에 접어든 현재, 올 시즌 투타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리그를 주름잡고 있는 두 명의 선수가 있다. 바로 두산 4번타자 김재환과 KIA 에이스 헥터다.
두산 김재환(상세기록 보기)은 0.341의 타율에 36홈런 119타점 1.071의 OPS(출루율 + 장타율)를 기록 중이다. 리그 전체에서 홈런 3위, 타점 4위, 장타율 2위다.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은 6.16으로 리그 타자 중 5위에 올라있다.
▲ 2016시즌 OPS 1~10위의 주요 기록 (출처: 야구기록실 KBReport.com) |
ⓒ 케이비리포트 |
KIA 헥터(상세기록 보기)는 14승 5패 평균자책점 3.42 승률 0.737을 기록하고 있다. 다승 공동 5위, 평균자책점 3위, 승률 5위에 올라있다. 소화 이닝은 194.2이닝으로 단연 리그 1위다. 두산에 비해 약한 팀 타선 탓으로 승수만 모자랄 뿐 WAR 역시 5.95로 역시 리그 1위다. (평균실점율 기반인 RA9-WAR도 7.54로 1위다.) 명실상부한 리그 최고 투수 중 한 명이다.
▲ 2016시즌 최다이닝 1~10위 (출처: 야구기록실 KBReport.com) |
ⓒ 케이비리포트 |
올 시즌 소속팀 투타의 핵인 두 선수에게는 탁월한 활약말고도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금지 약물 적발로 징계를 받은 어두운 과거가 그것이다.
두산 김재환은 2011년 10월 야구월드컵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지만 사전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인 S1 동화작용 남성호르몬 스테로이드가 검출돼 국가대표 자격 박탈과 함께 1군 1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바 있다.
KIA 헥터 역시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6년, 루키 리그 소속이던 19세에 경기력 향상 약물(Performance-Enhancing Drugs, PED) 복용 적발로 50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은 사실이 있다.
약물 사용이 남는 장사?
2015시즌까지 KBO리그의 금지 약물 사용에 대한 징계는 그야말로 솜방망이 수준이었다. 경기력 향상 약물을 복용한 김재환에 대한 KBO의 징계는 고작 10경기였고 지난 시즌 6월 금지 약물 스타노조롤 사용이 적발된 최진행(한화)도 30경기 출전 정지에 그쳤다. 징계 발표 후 해당 선수에게 재조정을 위한 휴가를 준 게 아니냐는 비아냥마저 속출할 정도였다.
▲ 지난 시즌 도핑에서 적발된 한화 최진행 |
ⓒ 한화 이글스 |
KBO는 올시즌부터 금지약물 사용 1차 적발 시 72경기, 2차 적발 시에는 시즌 전 경기 출장 정지로 징계를 강화했다.
하지만 이 정도 징계로 약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지는 의문이다. 적발 및 징계를 각오하고 약물을 사용해 두각을 드러낼 수만 있다면 국내외의 여러 사례를 돌이켜보더라도 선수로서는 '남는 장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최진행은 30경기 출전 정지에 덧붙여 한화 구단 자체 징계에 따라 2천만 원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하지만 0.291의 타율 18홈런 64타점 0.915의 OPS(출루율+ 장타율)를 기록한 최진행은 시즌 종료 후 1억5000만 원에서 1억 8500만 원으로 연봉이 상승했다.
약물 사용으로 인한 2000만원 벌금보다 1500만 원이 더 많은 3500만 원의 연봉 인상을 이룬 셈이다.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된 그 시즌에만 국한해 봐도 약물 사용이 '남는 장사'가 됐다.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면...
김재환과 헥터의 경우 약물 사용 적발이 각각 5년, 10년 전이고 그 이후 도핑 검사에서 적발된 적이 없으니 지금의 성적을 두고 비판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견해도 있다. 과거 금지약물을 사용한 효과가 현재까지 지속되는 것도 아닌데 두고두고 물고늘어지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타고난 재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1군 무대에서 통하는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원석과도 같은 자신의 재능을 가다듬어야 한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계에 부딪혀 낙오하는 수많은 젊은 재능들을 매년 목격하게 된다. 치열한 경쟁의 과정에서 약물의 힘을 빌린 사실이 있다면 그것이 지금의 성적, 위치와 무관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또 하나, 승패가 갈리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윈윈(Win-Win)'은 나올 수 없다. 경기를 치르는 양 팀이 모두 승리할 수는 없다.
맞대결을 펼친 투수와 타자가 모두 이익을 볼 수도 없다. 타자가 홈런을 치면 투수가 울고, 투수가 삼진을 잡으면 타자가 운다. 그것이 스포츠의 생리다. 그렇기에 정정당당히 기량을 겨루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기본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공정한 경쟁'이라는 게임의 법칙을 깨뜨린 경력이 있는 선수의 기록과 활약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또 멋진 플레이를 보고도 감탄보다 의심이 앞서게 되는 상황은 지켜 보는 이들에게도 가시지 않는 불편함을 준다. 스포츠맨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그 순간, 그에 대한 모든 비판은 잘못된 선택을 한 선수 본인이 온전히 지고 가야 할 몫이다.
소급징계는 힘들지만 환호와 명예는 적절치 않다
물론 약물 복용이 적발된 기존 선수들에게 소급 징계를 내리자는 것은 아니다. 기존 규정에 따라 징계를 다 받은 선수들이 경기에 출장하는 것은 소속 구단과 감독이 결정할 소관이다. (금지약물 복용 전력 선수를 기용하거나 영입함으로써 얻게 되는 득과 실은 결국 해당 구단이 책임질 부분이다.)
하지만 금지 약물 복용 전력이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실수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나 그들의 활약에 거리낌없이 환호를 보내는 현재의 풍토는 재고되어야 한다.
지난 5월 KBO리그의 공식 시상인 월간 MVP로 더 뛰어난 성적을 남긴 테임즈나 나성범이 아닌 김재환이 선정된 것은 금지 약물 사용을 가장 경계해야 할 KBO가 앞장서서 공식 면죄부를 준 셈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KBO 리그 출입기자단 투표에서 유효표 28표 중 김재환이 11표(39.3%) 획득, 이에 대해서는 테임즈와 나성범의 표가 분산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규정에 따라 징계를 받았으니 경기 출장이야 자유지만 명예까지 부여하는 것은 온당해 보이지 않는다.
▲ 2016시즌 5월 OPS 1~5위 타자의 주요 기록 (출처:야구기록실 KBReport.com) |
ⓒ 케이비리포트 |
미디어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활약을 '속죄'라거나 가벼운 실수 정도로 포장해서는 안된다. 금지 약물 복용자의 징계 종료 후 맹활약을 이른바 '감성팔이'식 속죄로 포장하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선 새로운 금지 약물 사용자의 등장과 그로 인한 다수의 피해자가 언제든지 양산될 수 있다.
금지 약물 사용이 적발된 선수에 대해서는 모든 기록을 별도 관리하고 적발 후에는 영구적으로 개인 타이틀 수상에서 배제하는 정도의 강경한 조치가 뒤따라야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단 김재환, 최진행, 헥터 뿐 아니라 같은 사유로 징계를 받았거나 받게 될 다른 선수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사항이다.(관련 기사 : [야동만] 프로선수의 금지약물 복용, 어떻게 막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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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출처: 프로야구 통계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KBO기록실, 스탯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