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KBO리그 타자 Tool별 TOP 5
KBO리그에는 다양한 종류의 타자들이 있다. 타격 정확도가 유독 뛰어난 타자, 공을 잘 지켜보며 출루에 능한 선구안 좋은 타자, 일단 맞혔다 하면 장타를 뿜어내는 파워 히터, 상대 배터리를 농락하며 다음 베이스를 노리는 타자 등.
이 다양한 유형의 타자들은 자신의 ‘Tool’을 활용하여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팬들은 이들의 Tool에 열광한다.
‘2016 KBO리그 타자 Tool별 TOP 5’에서는 올 시즌 Tool별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한 선수들을 소개한다. Tool은 컨택, 선구안, 파워, 스피드 등 네 가지이고, 표본은 2016시즌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다.
컨택 TOP5 : 이용규
‘용규놀이’의 대명사 이용규가 2016시즌 최고의 컨택 히터로 등극했다. 타율 부문에선 최형우,김태균에 이어 3위에 올랐으며 컨택% 부문에서는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 올시즌 컨택%는 무려 93.5%로 2위 유한준(90.0%)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수치다.
타율과 컨택% 외에도 그의 뛰어난 컨택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많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2스트라이크 이후 커트%다. 그는 올 시즌 2스트라이크 이후 무려 92.6%의 커트 확률로 리그 1위를 기록했다. 2스트라이크 이후 스트라이크를 그냥 흘려보내거나 헛스윙을 한 것이 고작 7.4%밖에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를 상대하는 투수들에겐 이른바 ‘커트 지옥’을 보여주는 특유의 강점이다.
2스트라이크 이후 물고 늘어지는 능력이 탁월하니 당연히 삼진 수도 적다. 이용규는 올 시즌 29삼진으로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 중 가장 적은 삼진을 당한 선수였다. 이는 리그 최다 삼진 타자인 나성범(136)의 1/5에 가까운 수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기록이 올 시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2015시즌에도, 2014시즌에도 컨택% 리그 1위를 차지했다. 2스트라이크 이후 커트% 역시 최근 3시즌 연속 1위이며, 삼진 수는 2014시즌과 2015시즌 모두 최소 4위를 기록했다. 컨택 능력에서는 KBO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175cm/70kg의 왜소한 체격과 한 시즌 2~3홈런 밖에 때려내지 못하는 파워를 극복하고, 막강한 컨택 능력을 통해 리그 최정상급 타자로 올라선 이용규. 야구 만화의 주인공은 현실 속에 있었다.
선구안 TOP5: 김태균
IsoD 부문은 KIA 나지완이 큰 차이로 1위를 차지했고, 볼넷/삼진 부문에서는 컨택 능력의 제왕 이용규가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올 시즌에도 열심히 공에 맞은 최정, 지난 시즌 리그 최소 삼진의 김재호도 눈에 띄는 이름이다.
하지만 IsoD와 볼넷/삼진 부문에 모두 이름을 올린 타자는 김태균이 유일하다. 지난 시즌 IsoD부문 1위(0.141), 볼넷/삼진 부문 5위(1.225)에 오른 김태균은 올 시즌에도 여전한 선구안을 과시하며 ‘선구왕’ 자리를 유지했다.
또한 올 시즌 무려 108개의 볼넷을 골라내며 역대 3번째로 통산 1000볼넷 고지를 밟았으며 그와 동시에 역대 최초 단일시즌 300출루라는 위업도 달성했다. 리그 출루율 1위(0.475)는 당연한 결과. 타석당 4.26개의 공을 지켜보며 타석당 투구수 리그 1위를 차지한 것 역시 그의 놀라운 선구안을 증명하는 기록이다.
통산 성적을 보면 놀라움은 더해진다. 김태균은 통산 3000타석 이상을 소화한 타자 중 가장 높은 출루율(0.431)을 기록 중인 타자. 2012시즌 KBO에 복귀한 이후 3시즌 연속 출루율 왕좌를 차지했으며, 지난 시즌 역대급 성적을 남긴 테임즈의 위세에 2위로 밀렸지만 올 시즌 다시 출루율 1위를 탈환했다. KBO 복귀 이후 그의 출루율은 무려 0.464에 달한다.
김태균에 대해 ‘홈런을 못치는 4번타자’라고 지적도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홈런만 적을 뿐 존재감이 뚜렷한 타자’다. KBO 역대 최고 수준의 선구안에 한 시즌 평균 20홈런이라는 보너스까지. 이제껏 KBO에 존재하지 않았던 ‘선구형 거포’ 김태균이 2017시즌에는 팀을 가을 잔치로 이끌 수 있을 지 지켜보도록 하자.
파워 TOP5 : 테임즈
지난 시즌 ‘파워 Tool’의 챔피언은 테임즈와 박병호였다. 테임즈는 0.409의 IsoP로 박병호(0.371)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고, 박병호는 9.96타수당 1홈런을 터트리며 10.04타수당 1홈런의 테임즈를 꺾고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홈런왕’은 박병호, ‘장타왕’은 테임즈였던 셈. 둘은 강력한 파워로 KBO를 양분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 종료 후 양자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 해외 진출 자격을 얻은 박병호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MLB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한 것이다. 여기에 박병호-테임즈에 버금가는 파워를 선보였던 나바로마저 NPB로 떠났다. 바야흐로 테임즈 독주 체제가 시작되는 듯했다.
예상대로 테임즈는 홀로 파워 Tool을 휩쓸었다. 테임즈는 올 시즌 40개의 홈런을 터트리며 홈런왕을 차지했고, 0.679의 장타율로 2시즌 연속 장타율 1위를 기록했다. IsoP와 타수/홈런도 당연히 1위. 테임즈는 3시즌 연속 0.650 이상의 장타율, 2시즌 연속 40홈런으로 자신의 막강한 파워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다만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었다. 올시즌 테임즈는 상대팀의 집중 견제로 인해 지난해에 비해 기복있는 모습을 보였다. 상대 투수들은 테임즈의 약점인 몸 쪽 높은 코스를 집요하게 공략했고, 테임즈의 성적은 지난 시즌에 비하면 크게 떨어졌다. 타율은 6푼이 떨어졌고 장타율은 1할 넘게 하락했다. 또한 홈런, 타점, 볼넷, 도루는 줄고 삼진 수는 늘어났다.
게다가 시즌 막판에는 음주운전 적발로 징계를 받으며 그를 응원했던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이어진 한국시리즈에서는 16타수 2안타, 타율 0.125에 머물며 다시 한 번 추락했다. 테임즈에게 올 시즌은 데뷔 첫 홈런왕의 기쁨과 추락의 위기감이 교차한 해였다.
다가올 2017시즌 테임즈가 NC와 함께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테임즈가 KBO리그에 잔류하더라도 다음 시즌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올 시즌 KBO 최고의 파워 히터로 자리매김한 테임즈가 향후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주목해 보자.
스피드 TOP5 : 박해민
2000년대 후반 KBO 도루왕 경쟁의 주도권은 ‘슈퍼 소닉’ 이대형이 쥐고 있었다. 2005시즌 37도루로 시동을 걸더니 2007시즌 53도루로 첫 도루왕을 차지했고, 전무후무한 4시즌 연속 50도루, 3시즌 연속 60도루 기록을 세우는 등 믿기지 않는 질주를 거듭했다. 이대형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준족의 아이콘’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이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 박해민은 2014시즌 36도루로 도루 5위에 이름을 올리며 시동을 걸었고, 지난 시즌 무려 60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생애 첫 도루왕에 올랐다. 이대형을 포함 이용규, 정근우, 이종욱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도들도 ‘젊은 피’ 박해민의 질주를 따라잡지 못했다.
'람보르미니' 박해민의 질주는 올 시즌에도 계속됐다. 4월 한 달간 1도루에 그치며 불안하게 출발했지만 5월 9도루로 감을 되찾았다. 이어진 뜨거운 여름에는 6~8월 모두 두 자리 수 도루를 성공시키며 일찌감치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단독 선두 체제를 구축했다. 시즌 종료 후 그의 도루 개수는 무려 52개. 그는 이종범-이대형 만이 기록했던 2시즌 연속 50도루 달성자로 우뚝 섰다.
이제 도루 부문은 명실상부 박해민의 시대다. 박해민은 프로 원년 김일권에서 시작해 이순철-전준호-이종범-정수근-이대형으로 이어져온 ‘대도’의 계보를 이을 적자. 이제 ‘대도’라는 단어와 함께 자연스레 연상되는 이름은 박해민의 이름 석 자다.
[기록 및 사진 출처: 프로야구기록실 KBReport.com, KBO 기록실, 스탯티즈]
계민호 기자/ 편집: 김정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