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골든글러브, 기록만 보고 뽑는다면?
2020년 KBO리그의 마지막 공식 행사는 골든글러브 시상식이다. 매해 12월 11일 KBO(한국야구위원회)의 창립기념일에 개최되며 포지션별 최고 선수 10명에게 시상된다.
수비와 타격 능력에 따라 골든글러브와 실버슬러거를 구분하는 메이저리그와 달리 KBO리그는 실버슬러거를 시상하지 않는다. 포지션별 최고 선수에 대한 기준은 수비보다는 타격에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선수 개인의 정규 시즌 성적만이 기준이 되어야 하지만 그의 포스트시즌 활약 여부, 인기, 국적, 혹은 소속 팀 성적까지 미디어 종사자로 구성된 투표인단이 반영하는 경우가 많아 공정성 논란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러 변수를 제외하고 오로지 정규 시즌 기록을 중심으로 평가했을 때 2020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가장 적합한 선수들은 누구일까?
소속 구단의 성적이나 인기, 선수의 유명세, 국적 등을 배제하고 오직 기록을 중심으로 선정한 부문별 최고의 선수들을 확인해 보자
1. 투수 부문 – 알칸타라, 스트레일리 제칠 듯
올 KBO리그는 외국인 선발 투수가 득세가 두드러졌다.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를 나타내는 WAR(케이비리포트 기준)의 투수 부문 1위부터 6위까지 모두 외국인 선발 투수였다. 마무리 투수 중에서도 확실히 두드러지는 선수가 없어 외국인 선발 투수 중에서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나올 전망이다.
유력 후보는 스트레일리(롯데)와 알칸타라(두산)다. 스트레일리는 KBO리그 데뷔 첫 시즌이었던 올해 31경기에 등판해 15승 4패 평균자책점 2.50 피OPS(피출루율 + 피장타율) 0.562를 기록했다.
롯데 자이언츠 타자들의 득점 지원이 넉넉했다면 20승 도전도 가능했을 것이다. 205개의 탈삼진으로 리그 1위로 개인 타이틀을 차지했고 WAR은 8.28로 투수 부문 1위였다.
알칸타라는 2019시즌 종료 뒤 kt 위즈와의 재계약에 실패한 뒤 두산 베어스와 계약을 맺었다. KBO리그 2년 차인 올해는 kt 시절과 달리 포크볼을 장착해 리그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31경기에 선발 등판해 20승 2패 평균자책점 2.54 피OPS 0.607 WAR 8.16로 다승왕 타이틀과 함께 승률 0.909로 승률왕 타이틀까지 석권해 2관왕이 되었다.
WAR은 스트레일리가 알칸타라보다 0.12로 근소하게 높으나 승리는 알칸타라가 5승이 더 많다. 소화 이닝은 알칸타라가 198.2이닝으로 2위, 스트레일리가 194.2이닝으로 3위로 알칸타라가 약간 더 많았다.
대부분 지표가 비슷한 가운데 승수에 있어 알칸타라가 크게 앞서 그의 골든글러브 수상이 유력하다. 투표인단 역시 가을야구에 실패한 7위 롯데의 스트레일리보다는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두산 알칸타라에 기울 것으로 보인다.
스트레일리는 지난 3일 인센티브 제외 총액 120만 달러에 롯데와 재계약했다. 알칸타라 역시 두산이 재계약 방침을 세웠다. 올해 190이닝 이상을 던진 두 투수가 내년에도 건재해 다시 한번 골든글러브를 놓고 대결할지 주목된다.
역시 원소속 구단과 재계약해 내년에도 KBO리그에서 뛰는 브룩스(KIA)와 요키시(키움)의 행보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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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포수 부문 – 양의지 3년 연속 수상 확실시
2020 골든글러브에서 몇몇 부문은 수상자를 예측하기 매우 쉽다. 그중 하나는 포수 부문이다. NC 다이노스의 창단 첫 통합 우승의 주역 양의지다. 올해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면 양의지는 3년 연속 및 통산 6회가 된다.
양의지는 타율 0.328 33홈런 124타점 OPS(출루율 + 장타율) 1.003을 기록했다. WAR은 6.92로 KBO리그 야수 중 2위다. 참고로 WAR 2위 포수는 타율 0.287 19홈런 61타점 OPS 0.836 WAR 3.15의 강민호(삼성)다. 강민호의 기록은 포수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인상적이지만 WAR은 양의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양의지는 상대의 56회의 도루 시도 중 32회를 허용하고 24회를 저지해 도루 저지율 42.9%를 기록했다. KBO리그에서 200이닝 이상 마스크를 쓴 21명의 포수 중 단연 1위에 해당하는 좋은 기록이다.
NC에 FA 이적 첫해였던 2019년 양의지는 잔 부상으로 인해 118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러나 NC 2년 차였던 올해는 이동욱 감독의 세심한 관리 및 배려로 130경기에 출전하며 NC의 첫 정규 시즌 1위를 이끌었다.
일부 현장 지도자는 ‘고액 FA 선수는 무조건 많은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며 선수 관리를 등한시하다 정규 시즌 막판 해당 선수의 컨디션 난조로 팀 순위 하락을 피하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 양의지에 대한 관리가 최종적으로 NC에 어떤 결과로 돌아왔는지는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양의지는 친정팀 두산을 상대한 한국시리즈에서 MVP를 차지하며 KBO리그 역대 2위에 해당하는 4년 총액 125억 원의 ‘몸값’을 2년 만에 다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시리즈 MVP 선정은 의문을 남겼다. 양의지의 한국시리즈 성적은 타율 0.318 1홈런 3타점 OPS 0.945로 좋았으나 과연 MVP 선정은 바람직했는지 의문이다.
한국시리즈에서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3경기에서 2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0.69의 루친스키가 MVP를 수상해야 했다는 시각이다. 만일 루친스키가 국내 선수였다면 양의지를 제치고 MVP 수상이 유력했을 것이다. ‘국적’에 의해 좌지우지된 미디어 종사자 투표의 문제점이 다시 한번 드러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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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루수 부문 – 강백호 첫 수상 유력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의 유력 후보는 강백호(kt)와 라모스(LG)다. KBO리그 데뷔 3년 차의 강백호와 올해 KBO리그에 데뷔한 라모스는 만일 골든글러브를 수상한다면 처음이 된다.
강백호는 1루수 전환 첫해인 올 시즌 타율 0.330 23홈런 89타점 OPS 0.955 WAR 5.17을 기록했다. 타점, OPS, WAR은 모두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1루수 수비에서는 1064이닝 동안 10개의 실책을 저질러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강습 타구 처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1루수 전환 2년 차인 내년에는 경험이 쌓여 안정화를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라모스는 LG 트윈스의 역대 외국인 타자가 해소하지 못했던 ‘홈런 갈증’을 구단 역사상 한 시즌 최다인 38홈런으로 후련하게 풀어냈다. 그는 타율 0.278 86타점 OPS 0.954 WAR 3.69를 기록했다.
1루수 수비에서는 827이닝 동안 6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좌우로 빠져나가는 타구에 대한 수비 범위는 넓지 않으나 정면 타구 처리나 송구는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강백호는 129경기, 라모스는 117경기에 출전했다. 라모스는 부상자 명단 등재 3회를 비롯해 합계 34일 동안 1군 제외가 아쉬웠다. 만일 부상이 없었다면 40홈런 달성도 가능했을 것이다. 시즌 막판 라모스의 부상 공백은 LG의 4위 추락에 일조한 것이 사실이다. 1루수 골든글러브는 홈런을 제외한 모든 지표에서 라모스에 앞서는 강백호가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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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루수 부문 – 박민우 2년 연속 수상 유력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포수 부문과 마찬가지로 수상자를 예견하기 쉽다. 양의지와 함께 NC의 통합 우승에 이바지한 주전 2루수 박민우다. 박민우는 타율 0.345 8홈런 63타점 OPS 0.877 WAR 4.72로 홈런과 WAR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박민우의 WAR은 리그 2루수 중 1위다. 올 시즌 종료 뒤 해외 진출 자격이 되는 그가 팀 동료 나성범과 같이 왜 본격적으로 도전하지 않는지 아쉬워하는 일각의 목소리도 있다.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2루수 골든글러브의 강력한 후보로는 김상수(삼성)가 꼽혔다. 2009년 1차 지명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며 프로에 데뷔한 김상수는 지난해부터 유격수에서 2루수로 전환되었으나 골든글러브 수상 경력은 없었다.
김상수는 8월 이후 부상이 겹치며 정규 시즌 종료 시점까지 52경기에서 타율 0.268 2홈런 23타점 OPS 0.685로 하락세를 숨기지 못했다. 결국 타율 0.304 5홈런 47타점 OPS 0.798 WAR 3.14로 커리어하이에는 성공했으나 전반적인 지표는 박민우에는 미치지 못했다.
김상수는 커리어의 대부분을 열악한 인조 잔디 구장인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뛰었던 탓인지 매 시즌 부상에 발목이 잡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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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자격을 취득한 2루수 최주환은 타율 0.306 16홈런 88타점 OPS 0.839 WAR 3.63을 기록했다. 홈런과 타점에서는 리그 2루수 중 최고이지만 타율과 OPS, WAR은 박민우를 넘어서지 못했다.
‘FA 대어’로 타 구단으로의 이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최주환이 내년에는 첫 골든글러브 수상이 가능할지 주목된다.
5. 3루수 부문 – 최정이 WAR 높으나 황재균이 수상할 듯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WAR로만 선정한다면 5.57로 3루수 중 리그 1위이자 전체 야수 중 7위인 최정(SK)이 가장 근접하다. 최정은 올 시즌 타율 0.270 33홈런 96타점 OPS 0.930을 기록했다. 홈런, 타점, OPS는 손색이 없으나 문제는 저조한 타율과 9위에 그친 SK의 성적이다.
실제 수상자는 황재균(kt)가 될 가능성이 크다. 황재균은 타율 0.312 21홈런 97타점 OPS 0.882를 기록했다. WAR은 5.02로 리그 3루수 중 2위이자 전체 야수 중 11위다. 3할 타율은 골든글러브 투표에 참여하는 미디어 종사자들이 중시하는 지표다.
게다가 kt 위즈의 창단 첫 가을야구에 대한 기여도도 높이 평가받을 것으로 보인다. 2006년 2차 3라운드 24순위로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한 황재균이 만일 골든글러브를 수상한다면 프로 데뷔 후 15년 만에 처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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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브리그 FA 시장에서 최대어로 꼽히는 허경민(두산)도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는 타율 0.332 7홈런 58타점 OPS 0.824 WAR 3.26을 기록했다. 고타율이 인상적이지만 나머지 지표들은 최정과 황재균에 비하면 뒤지는 것이 사실이다.
6. 유격수 부문 – 김하성 3년 연속 수상 유력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2018년과 2019년 수상자인 김하성(키움)의 3년 연속 차지가 확실시된다. 김하성은 올 시즌 타율 0.306 30홈런 109타점 OPS 0.920 WAR 6.81을 기록했다. 2014년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30홈런 고지에 등정했으며 타점과 OPS, 그리고 WAR이 모두 커리어하이다. 그의 WAR은 리그 야수 중 3위에 해당한다.
김하성은 예년보다 수비 부담이 매우 컸던 시즌이었다. 키움 히어로즈는 6월 모터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의 러셀을 영입했다. 러셀의 유격수 출전을 위해 김하성이 3루수로 이동하는 등 키움 내야의 전체적인 틀은 크게 흐트러졌다.
김하성은 유격수로 743이닝 동안 14실책, 3루수로 360.1이닝 동안 6실책을 기록해 합계 20실책으로 실책이 많았다. 키움은 112실책으로 리그 최다 1위의 불명예에 이름을 올렸다.
올 시즌 종료 뒤 메이저리그 진출에 포스팅으로 도전하는 김하성이 3루수를 전전하지 않았다면 공수 지표는 훨씬 좋아졌을 것이라는 시선이 있다. 하지만 과거 강정호가 그랬듯이 메이저리그 구단은 김하성의 3루수 전환 혹은 내야 유틸리티 플레이어 가능성을 바라보고 영입할 가능성도 있다. 김하성에게 핫코너 수비가 ‘쇼케이스’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3할 타율(0.300)을 달성한 오지환(LG)과 부드러우면서도 안정적인 유격수 수비를 과시한 마차도(롯데)도 인상적이었으나 수상 가능성은 희박하다. 두 선수는 김하성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 내년에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놓고 경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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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외야수 부문 – 로하스-이정후 유력, 나머지 한 자리는?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3개 중 하나는 일단 정규 시즌 MVP를 차지한 로하스(kt)에 돌아갈 것이다. 로하스는 타율 0.349 47홈런 135타점 OPS 1.097을 기록하며 방망이로 KBO리그를 평정했다.
116득점과 장타율 0.680까지 포함해 홈런, 타점, 득점, 장타율 4개 부문의 개인 타이틀을 석권했다. WAR은 8.76으로 투타를 통틀어 1위를 차지했다. 과거 MVP가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해 논란이 된 적이 있으나 로하스의 골든글러브 획득은 확정적이다.
나머지 두 자리를 놓고 3명의 선수가 경합할 전망이다. 손아섭(롯데), 이정후(키움), 김현수(LG)다. 손아섭은 타율 0.352 11홈런 85타점 OPS 0.908 WAR 5.44를 기록했다. 그는 정규 시즌 막판까지 최형우(KIA)와 타격왕 경쟁에 임했지만 0.002 차이로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만일 손아섭이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했다면 골든글러브 수상이 유력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