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T 리포트
니퍼트는 어떻게 니느님이 되었나?
2015-02-25 수,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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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Report
KBO리그에서 외국인선수가 한팀에 꾸준히 머무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니퍼트는 다르다. 두산에서만 4년을 보냈고 올해로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이할 준비에 한창이다. 일본 진출설도 나돌았고 에이전트의 '밀당'도 있었지만 두산팬들의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졌다. 팬들 사이에선 니퍼트보다 '니느님'으로 통할 정도로 단연 국내 최고의 '100점짜리 외국인투수'다.
올해로 36세인지라 체력적인 부담도 느낄 만하지만 이닝 소화 능력과 타자를 압도하는 건 여전하다. 2013, 2014시즌에 등 부상으로 시즌 도중 어려움을 겪었고 투구 패턴이 읽혔다는 지적을 받았음에도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는 물론 역대 단일팀 외국인투수 통산 최다 승수도 경신했다. 지난 시즌까지 총 네 시즌 동안 그가 거둔 승수는 52승이었다.
특히 '삼성킬러'로서의 위력을 발휘하며 통합 4연패를 달성한 사자군단의 혼을 빼놓았다. 4년간 19번을 상대해 13승 1패 평균자책점은 2.33, 승률은 무려 .929에 달한다. 통산 승수의 25%를 삼성에게 챙긴 셈. 과연 강팀의 혀도 내두르게 한 니퍼트는 어떻게 장수 외인이 될 수 있었을까.
'니느님'의 첫째 조건, 이닝이터로서의 능력이다. (사진: 두산 베어스)
2010년 켈빈 히메네스가 분전하며 가을야구 초대장을 받은 두산은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통한의 끝내기 실책'이 나와 삼성에 무릎을 꿇었다. 팬들을 더욱 슬프게 만들었던 건 그 이후였다. 원소속구단인 두산을 대신해 라쿠텐과 손을 잡으며 히메네스와 두산의 재계약이 불발되었다. 순식간에 1선발이었던 투수가 나가면서 팬들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다.
그런 두산팬들에게 단비와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월드시리즈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던 택사스의 더스틴 니퍼트가 두산 유니폼을 입게 됐다는 것이었다. 히메네스의 여운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는 투수를 영입했다는 점에 팬들의 시선은 니퍼트를 향했다. '203cm 국내 최장신 투수'라는 특이한 신체적인 조건(?)도 이목을 끌었다.
국내 무대 데뷔전이자 LG와의 시즌 개막전 선발 투수로 낙점받은 그는 5이닝 동안 3피안타 2볼넷 무실점 피칭을 뽐내며 상대 타자들을 압도했다. 평소 보지 못했던 공을 본 LG 타자들은 스윙 한 번 제대로 하기가 어려웠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국내 첫 완봉승의 제물도 LG였다.(2011년 9월 1일 VS LG, 9이닝 5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
리그를 평정하며 이윽고 시즌 마지막 등판이었던 10월 6일 목동 넥센전에서 승리를 따내며 전 구단 상대 승리 투수가 되었다. 29경기 15승 6패 평균자책점 2.55, 빈 틈 한 번 보이지 않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아쉬움은 컸으나 김선우(현 MBC SPORTS+ 해설위원)와 함께 국내 최고의 원투펀치로 거듭났다.
무엇보다도 187이닝 소화로 리그 전체 2위를 마크했고 퀄리티스타트는 무려 19회를 기록해 리그 1위를 차지했다. 탈삼진 부분에서도 2위로 최고의 시즌을 보낸 니퍼트는 복수 구단의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두산과의 재계약에 집중했고 결국엔 일본이 아닌 두산을 한 번 더 선택했다. 팀의 부진 속에서도 팬들에게 위안거리가 됐던 투수이기에 니퍼트와 두산팬들 사이의 신뢰는 더욱 돈독해졌다.
2011~12시즌에 180이닝 이상을 소화한 그에게 2013년 '등 부상'이 찾아왔다. (사진: 두산 베어스)
2012시즌에도 니퍼트의 위력은 계속됐다. 패전 기록이 부쩍 늘어난 게 흠이지만 29경기 11승 10패 평균자책점 3.20, 세 차례의 완투승(리그 2위)을 기록했다. 지난 네 시즌을 통틀어 패전이 가장 많은 해였는데 이듬해에도 니퍼트가 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하나의 일화가 있다.
그 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만난 두산은 1, 2차전을 내리 내준 채로 부산 원정길에 올랐다. 3차전을 공격의 힘으로 가져와 1승 2패, '리버스 스윕'을 꿈꿀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4차전 중반까진 완벽히 재현될 듯한 느낌이 강했다. 선발투수 김선우의 호투와 윤석민(현 넥센)의 기선제압 솔로포에 힘입어 아슬아슬한 리드를 이어가고 있었다.
3-0으로 앞서던 8회말, 선발도 아닌 중간계투로 니퍼트가 등판해 순간 사직구장이 술렁거렸다. 두산 입장에선 뒷문을 완벽히 틀어막기 위한 카드였는데 안타깝게도 원하는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았다. 0.1이닝 4피안타 3실점, 경기를 지배하고 있었던 건 두산인데 단 한 이닝에서 공든 탑이 무너졌다. 마운드에서 쓸쓸히 물러난 니퍼트의 표정은 국내 무대 데뷔 이후 가장 어두웠다.
리드가 깨지고 끝내기 송구실책이 나와 '리버스 스윕'은 그저 꿈에 불과했다. 헌데 경기가 끝나고 부산의 한 호텔로 돌아간 두산 선수들 가운데서 가장 크게 우는 선수가 발견되었다. 그 선수는 국내 선수도 아닌, '이방인' 니퍼트였다. 한 관계자는 "그렇게 크게 우는 외국인선수는 처음 봤다."라며 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런 그에게 구단은 작별 인사가 아닌 재계약을 원했고 팬들도 비난이 아닌 격려로 감싸주었다.
심기일전, 2013시즌은 그래서 더 마음가짐을 제대로 했다. 전반기에만 10승을 쌓으며 일각에선 조심스럽게 '20승' 가능성도 언급했다. 페이스가 워낙 좋고 막을 팀이 없어 별 이상이 없다면 한 시즌 개인 최다 승수(2011시즌 15승)는 충분히 뛰어넘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올스타 브레이크에 돌입할 즈음 등 부상을 호소했다. 처음엔 열흘 정도면 복귀가 가능할 줄 알았는데 알려진 것보다 부상이 심각했다. 7월 17일 잠실 NC전 이후 약 두 달간 마운드에 설 수 없었다
9월 20일 잠실 LG전에서 복귀 인사를 한 그는 독기를 품고 공을 뿌려 후반기 세 차례 등판에서 2승을 올렸다. 결과적으로 총 118이닝, 정규이닝을 채우지 못했다. 무엇보다 팀을 중요시하는 니퍼트로선 굉장히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서인지 포스트시즌에서 독기를 품고 공을 뿌렸다. 팀의 준우승을 도왔고 준플레이오프 4차전과 5차전에선 구원 등판해 팀의 승리에 이바지했다. 세 시즌 동안 검증된 투수라는 것을 보여준 그를 구단에선 내칠 이유가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니퍼트의 행선지는 두산이었다.
잔부상에도 불구하고 니퍼트는 에이스로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했다. (사진:두산 베어스)
2014시즌, 네 번째 시즌이었다. 그만큼 타자들의 패턴에도 읽힐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상당했다. 니퍼트도 그 점을 잘 인지하고 있었고 대비도 했다. 하지만 시즌 초반부터 삐걱거렸다. LG와의 개막전에 등판해 승리투수가 되었지만 투구내용이 나빴다. 1, 2회는 거의 끌려가다시피 자신감이 뚝 떨어졌고 5이닝 7피안타 3사사구 3실점으로 만족스럽지 않은 경기였다.
4월에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4월 한 달간 2승 3패 평균자책점 4.35, 5월 4일 LG전에서도 6이닝 11피안타 5K 7실점 패전투수가 돼 한때 '외국인투수 교체설'도 제기되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 니퍼트를 믿던 두산팬들은 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믿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는데 단조로운 패턴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터닝포인트'를, 그것도 본인이 가장 강했던 삼성과의 홈 경기에서 맞이한다. 9이닝 5피안타 1사사구 2실점, 팀 타선도 대폭발해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투-타 밸런스가 최고조였던 이 경기를 완투승으로 장식하며 믿어준 팬들의 성원에 보답했다. 반등의 계기를 마련한 니퍼트는 12승 7패 평균자책점 3.81, 타고투저 시즌임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았다. WHIP(이닝당출루허용률)도 1.30으로 3위를 마크했다.
한국프로야구기록실 KBReport.com에 따르면 지난 시즌 투수 WAR 부문에서 밴헤켄(넥센), 밴덴헐크(현 소프트뱅크), 양현종(KIA)에 이어 전체 4위이자 팀 내 1위(4.89)였다. 피안타율은 .269(리그 7위), 피출루율(리그 2위) 등 세부적인 기록에서도 본인의 가치를 입증했고 지난해 9월 11일 잠실 한화전 승리로 역대 단일팀 외국인투수 최다 승수 기록도 갈아치웠다. 179.1이닝 소화로 리그 3위, 이닝이터의 자존심을 지켰다.
팀 미팅도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외국인투수는 적어도 국내에선 니퍼트가 유일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팀이 위기에 빠져있던 지난해 7월 12일 잠실 한화전에서는 7회에 등판해 9회초 2사까지 2.2이닝을 소화하며 국내 무대 첫 홀드를 챙겼다. 코칭스태프의 지시를 받지 않았는데도 본인이 등판을 자청했다. 보란듯이 150km를 넘나드는 빠른 공을 던졌고 무실점 피칭으로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현장에서 지켜보던 두산팬들 대부분이 일어나 박수로 니퍼트를 연호했다.
국내 무대 5년차, 한국 음식에도 적응했고 가족들은 한국 생활에 만족감을 보인다. 두산의 에이스,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외인 에이스로 우뚝 선 니퍼트는 올해도 1선발의 임무를 맡았다. 부상없이 한 시즌을 치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 언제까지 그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무대에서 은퇴할 생각도 있다."라는 그의 바램이 현실화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