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심 한화, 젊은 야수 육성이 절실
지난 2년 간 시즌 개막을 앞두고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팀은 바로 한화 이글스다. 지난해 일부 전문가들은 한화를 우승 후보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15~16시즌 동안 되풀이된 실패와 내부의 불협화음 탓일까? 실제 전력에 비해 올시즌 한화에 대한 예상은 다소 박한 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지난해 추락의 원인인 선발 마운드에 대한 물음표 때문으로 보인다.
한화 선발진은 지난해 ERA(평균자책점) 6.38로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다. ‘판타스틱 4’를 내세운 두산 선발진이 ERA 4.11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무려 2점 이상 차이. 선발 투수의 이닝(587), 퀄리티스타트(25) 역시 신생팀 kt에게도 상당한 격차로 최하위였다.
총액 330만불을 투자해 현역 메이저리거 2명을 영입했지만 최근 2~3년 간 불펜 투수로 활약한 이들이 선발 투수로 연착륙할 수 있을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다만 부상 복귀 전력도 상당하기 때문에 지난해보다는 한결 나은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2년 간 악전고투를 이어간 불펜진 역시 불안요소가 많다. 지난 시즌 후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은 권혁과 송창식이 순조로운 재활 페이스를 보이곤 있지만 개막 전력으로 합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노장 박정진(42), 심수창(37), 송신영(41), 이재우(38) 등은 당장 올시즌 활약을 장담하기 어려운 나이다. 확실한 전력이라 볼 수 있는 것은 장민재와 정우람 정도 뿐이다.
타선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다. 지난해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 7.57) 2위를 기록한 김태균에 리그 최고의 리드오프 이용규가 건재하고 33홈런-120타점 타자인 로사리오와도 재계약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무릎 연골 수술을 받았던 정근우가 통증으로 인해 캠프에서 이탈했지만 재활 페이스는 순조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시즌 평균 득점 4위(경기당 5.74득점)를 기록했던 타선의 핵심은 고스란히 유지된 셈이다. 언뜻 보면 야수진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사정이 다르다. 지난해 추락한 마운드에 가려져 있었을 뿐 야수진 곳곳에서 위험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1. 주전 의존 극심한 야수진
가장 눈에 띄는 문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극심한 주전 의존도다. 한화 야수진에는 김태균, 정근우, 이용규 등 각 포지션의 정점에 서 있는 이른바 ‘슈퍼 스타’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연봉으로나 실력으로나 리그 정상급 선수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이들 3인방을 제외한 한화는 실로 암담하기 짝이 없다.
지난 시즌 한화 야수진은 총 16.8의 WAR을 기록했는데, 이 중 94%인 WAR 15.8을 김태균(7.87)-정근우(3.88)-이용규(4.35)가 합작했다. 타선 전력의 90% 이상을 이들 세 명이 차지한 셈이다.
팀 내 WAR 상위 5명으로 폭을 넓혀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지난 시즌 한화 타자들 중 WAR 상위 5명은 김태균-이용규-정근우-로사리오-송광민이다.
이들이 합작한 WAR은 무려 22.09로, 한화 타선 전체 WAR(16.80) 대비 1.3배다. 1위 두산의 상위 5명이 팀 WAR의 76.7%를 기록한 것과는 사뭇 대비된다. 상위 5인에 대한 의존도가 한화보다 높았던 팀은 주전-백업 간 격차가 클 수 밖에 없는 kt뿐이다.
한화에서 위의 ‘5인방’ 외 30명의 타자 중 WAR 1.0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오히려 WAR이 0이하인 타자만 무려 22명이다. 리그에서 가장 많은 마이너스 WAR 야수를 보유한 팀이 한화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위 5명이 이탈할 경우 팀 전체가 휘청거리기 일쑤였다. 지난해 한화가 3연패 이상을 당한 것은 총 9차례인데, 이 중 무려 6차례가 이들 5인방의 결장과 맞물려있었다.
개막 첫 달인 4월 이용규와 송광민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3연패, 7연패, 3연패가 이어졌고 5위 싸움이 치열했던 9월에는 로사리오와 이용규가 결장하며 3연패, 5연패를 당했다.
팀 내에서 가장 높은 WAR을 기록한 김태균이 시즌 내내 라인업을 지킨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김태균이 다만 몇경기라도 결장했다면 팀순위가 9위로 추락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대표팀 평가전에서도 건재함을 과시한 김태균
#2. 30대 중반이 대세인 야수진
더 큰 문제는 주축 타자들이 점점 나이를 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82년 생인 김태균과 정근우는 올해 36세가 된다. 지난 해 커리어하이급 성적을 올린 두 선수지만 당장 올시즌 하락세가 시작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이외에도 송광민은 35세이며, 안방을 책임지는 조인성(43), 차일목(37), 허도환(34) 등 포수 3인방의 나이가 상당하다. 외야진의 김경언(36), 이성열(34), 장민석(36), 최진행(33)도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 주전 야수 태반이 30대 중반인 셈이다.
그렇다고 당장 2017시즌 주전으로 도약할만한 젊은 선수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현재 한화에서 주전급으로 성장이 기대되는 20대 야수는 하주석, 신성현, 양성우 정도가 전부다.
[오키나와리그] 만점 활약 보여주는 신성현의 적시타
최근 수 년 간 드래프트 상위 순번을 차지했으면서도 신인 육성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한화다. 한화는 지난 2년 간 권용관, 오윤, 허도환 등 베테랑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김민수, 노수광, 오준혁 등 20대 초중반의 젊은 야수들을 타 팀에 내줬다. 눈 앞의 성적에 급급한 사이 세대교체의 주역이 되어야 할 자원들이 소진되고 말았다.
# 암흑기의 재현? 리빌딩이 시급한 한화
한화의 암흑기가 시작된 2008년 이후를 돌이켜 보자. 당시 한화는 30대 중반의 야수들이 주축을 이루는 팀이었다.
73년생 김민재가 2009시즌(WAR -1.24)까지도 내야의 중심이었고, 외야 역시 강동우, 이영우 등 베테랑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안방은 1975년생 듀오 신경현과 이도형이 책임졌다. 내야, 외야, 그리고 안방까지 30대 중반의 선수들이 즐비한 상황. 현재의 한화와 상당히 흡사했다.
다만 과거가 좀더 희망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 당시에는 ‘20대 중반’에 리그 정상급 타자가 된 김태균이 있었고, 20대 고동진과 한상훈이 주전으로 도약하고 있었다. 거포 김태완을 비롯해 송광민, 오선진 등도 적지 않은 기회를 받으며 꾸준한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특정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 역시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녹록치 않다. 30대 중반이 주축을 이룬 야수진, 그리고 그들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도, 그들을 대체할 가능성을 지난 유망 자원의 실종. 타 구단처럼 과감한 리빌딩을 진행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성근 감독 부임 후 지난 2시즌 간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총력을 다한 대가는 혹독할 정도다. 적극적으로 FA 영입에 나섰던 지난 3년과 달리 박종훈 단장 부임 이후에는 내부 자원 유출을 최소화하고 외국인 선수 구성에 집중했다. 시나브로 다가온 야수진 노쇠화와 리빌딩이라는 난제를 박단장과 한화가 어떤 형태로 푸느냐에 따라 한화의 향후 10년이 달려있다.
[기록 출처: 야구기록실 KBReport.com, KBO 기록실, 스탯티즈]
계민호 기자 / 정리 및 편집: 김정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