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게 손해' KBO의 도루, 성공률을 높여라
‘뛰는 야구’가 한국야구의 경쟁력으로 꼽히던 시기가 있었다. 신체적 요건 등으로 미국을 비롯 국제 무대 강팀에 비해 장타력이 부족했기에 한국야구의 활로를 '발야구'를 통해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고 잦은 시도 덕분인지 종종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KBO리그 원년이던 1982시즌, 정규리그 240경기 동안 무려 699개의 도루가 기록됐는데 경기 당 2.91개 였다. 경기 당 홈런(1.51개)에 비해 2배 가량 높은 수치였다.
이후 경기당 도루 수는 시즌을 거듭할 수록 줄었다. 기본적인 수비력이 점점 개선된 것은 물론 1982시즌 평균 176.5cm/73.9kg였던 선수들의 체격이 2016시즌 182.7cm/86.2kg으로 괄목상대할 만큼 커지면서 장타력이 크게 올라간 것이 주 원인이었다.
이제 KBO리그는 도루(경기당 1.47개)보다 홈런(경기당 2.06개)이 더 자주 나오는 리그다.하지만 예전에 비해 도루 빈도가 줄었다 해도 타 리그에 비하면 KBO리그의 도루 시도는 여전히 많다.
지난해 KBO의 경기당 도루 수(1.47개)는 MLB(경기당 0.52도루)에 비해 2.8배 이상 많다. NPB(경기당 1.19도루)와 비교해도 꽤 많은 편이다. KBO리그의 현장 지도자 중에도 ‘뛰는 야구’가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상당하다.
‘뛰는 야구’? KBO리그 통산 도루 성공률, 고작 66.1%
그렇다면 KBO식 ‘뛰는 야구’는 승리를 가져왔을까? 숫자로 드러난 결과는 ‘아니오’에 가깝다.
‘세이버메트릭스의 대부’로 불리는 빌 제임스는 자신의 저서 [더 북 (The Book)]을 통해 “도루 성공률이 70% 이하라면 절대 시도하지 말라”고 밝힌바 있다. 다른 세이버메트리션들의 의견도 대체로 비슷하다. 수치는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70% 이하의 도루성공률은 팀 득점에 마이너스가 된다는 견해가 대다수다.
지난 35년 간 KBO리그의 시즌 도루성공률이 70%를 넘은 시즌은 단 3시즌(2009, 2010, 2014)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2010, 2014시즌은 각각 70.3%, 70.1%로 간신히 70%를 넘긴 수준. (2009시즌 72.6%)
KBO리그의 통산 도루성공률은 고작 66.1%에 불과하다. ‘뛰는 야구’를 주창하며 ‘발야구’가 KBO의 강점이라고 말하던 이들의 주장이 무색해지는 수치다.
지난해 기록은 더욱 암담하다. 2016시즌 1058도루/547실패로 고작 65.9%의 도루 성공률을 기록했다. 10개 팀 중 도루 성공률이 70%를 넘긴 구단은 15시즌에 비해 도루 자제를 공언한 NC 다이노스(70.7%)뿐이었다. (99도루/41실패)
도루를 많이 기록한 5팀(넥센, 롯데, LG, 삼성, KIA)은 모두 70% 미만의 도루 성공률을 기록했다. 도루를 팀의 주무기로 활용했지만, 실제 득점에서는 손해를 본 셈이다.
상위권 준족들의 기록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2016시즌 도루 3~6위인 이대형-고종욱-김하성-서건창 모두 60%대의 도루성공률을 기록했다. 도루 수는 많았지만 도루 실패로 인한 득점 기회 비용 상실이 더컸다. 단순히 도루 성공 횟수만을 보고 '준족'이라 칭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들 정도다.
# 2017시즌 개막전에서 나오는 이우민의 결정적 도루 실패
이제 고작 총 60경기를 치렀을 뿐이라 의미있는 수치는 아니지만 올해도 큰 차이는 없다. 올 시즌 KBO리그는 69.4%의 도루성공률을 기록 중이다. 그나마 이는 두산(14시도/1실패)이 도루성공률 92.9%를 유지하고 있기에 가능한 수치.
두산을 제외하면 리그 도루성공률은 66% 이하로 곤두박질친다. 심지어 한화(50.0%), SK(55.6%)는 60%에도 미치지 못한다. 선수 중에는 도루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은 이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KBO 65.9%, MLB 71.7%, NPB 70.7%. 가장 많이 뛰고 가장 성공률 낮은 KBO리그
야구의 본고장 메이저리그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크다. 경기당 도루 시도 자체가 1.46개인 MLB는 지난해 71.7%의 도루 성공률을 기록했다. 도루 성공 횟수 상위 10개 팀은 휴스턴 애스트로스(69.9%)를 제외하면 모두 도루 성공률 70%를 넘겼다. 도루 3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81.5%)와 4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81.2%)는 무려 80% 이상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올 시즌도 마찬가지다. 현재 MLB는 70.0%의 도루성공률을 기록 중이다. 절반이 넘는 17개구단이 도루성공률 70% 이상을 기록했으며, 이중 11개 구단은 8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KBO리그에서 도루 성공률 80% 이상의 팀을 단 한 번도 배출하지 못한 것과 대조되는 기록이다
상대적으로 KBO리그와 유사한 부분이 많은 일본리그(NPB)와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NPB는 지난 시즌 70.7%의 도루 성공률을 기록했다. 도루 상위 6개 구단 중 4팀이 도루 성공률 70%를 넘겼다. 도루 1위를 차지한 니혼햄 파이터스는 132도루/39실패로 77.2%의 성공률을 기록했다. ‘뛰는 야구’를 주무기로 삼은 팀답게 높은 성공률이다.
무작정 ‘뛰는 야구’는 그만! 효율성 높은 도루가 필요해
KBO의 ‘뛰는 야구’가 이처럼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버린 것은 도루 실패로 인한 기회 비용의 상실을 간과한 탓이 크다. KBO는 지난 3년 간 역대 최고의 타고투저 시즌이 이어지고 있다. 굳이 도루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무모하게 도루를 시도하지 않더라도 득점을 창출할 방법은 많다.
하지만 여전히 KBO의 다수 구단과 감독들은 도루 성공 횟수에 집중할 뿐, 도루 실패로 인한 손해는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물론 개중에는 염경엽 전 감독(현 SK단장)처럼 도루 성공률 75%를 가치있는 도루의 마지노선으로 여기면서도 상대 벤치와 수비진에게 부담을 주기 위해 성공률에 구애받지 않고 전략적으로 도루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2016시즌 넥센 154 도루/ 83실패, 성공률 65%)
위에 제시된 표에 따르면 도루 실패로 인한 평균 기대 득점값의 변화는 타고투저 시즌인 90년대 후반, 그리고 지난 3년 간 특히 낮았다. 타고투저 시즌에는 똑같이 한 번의 도루 실패를 하더라도 잃게 되는 득점 손실이 더욱 크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루 성공률에 대한 재고 없이 무턱대고 ‘도루를 많이 하겠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팀의 득점력을 낮추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스트라이크존 조정으로 타고투저가 완화되고 있는 올시즌의 경우도 다소의 진폭은 있겠지만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 감독과 선수들은 '적극적으로 뛰는 야구를 시도하겠다, 올 시즌 몇 개의 도루를 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은 해도 도루성공률에 대한 고민이나 목표를 드러내는 감독이나 선수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실제 팀 승리에는 '몇 개의 도루를 성공하느냐'보다는 '도루성공률이 얼마나 높았느냐'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는데도 말이다.
#역대 통산 도루 성공률 10걸 (100도루 이상 기록자 대상)
#도루 성공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2시즌 연속 도루왕 박해민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다. 뭔가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상황 판단없이 ‘뛰는 야구’가 아니라 실제 팀 득점에 도움이 될거라 확신이 드는 상황에서 도루를 시도해야 한다. 같은 3할-20홈런 타자라도 50삼진을 당하느냐 100삼진을 당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다르듯, 같은 30도루라도 성공률에 따라 그 가치가 천양지차다.
승부사의 직감에 의존해 경기를 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모든 플레이 하나 하나의 실제 가치를 따지고 무의미한 실패를 줄여야 더 많은 승리에 다가설 수 있는 시대다.
기록이나 통계가 정답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확실한 오답을 소거해주는 경우는 종종 있다. 실패 시 위험 부담이 높은 도루는 가급적 시도하지 않는 편이 정답에 가깝다. 하지만 꼭 뛰어야 한다면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만 뛰어라!
[기록 출처: 야구기록실 KBReport.com, KBO 기록실, 스탯티즈]
계민호 기자 / 김정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