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에이스' 박세웅, 3가지 불안요소
지난해 박세웅은 프로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2017년 최종 성적은 28경기 171 1/3이닝 12승 6패 ERA 3.68. 데뷔 3년차에 ‘10승+3점대 ERA’를 기록했고 소속팀 롯데가 5년 만에 가을잔치에 진출하는데 크게 기여하며 ‘안경잡이 에이스’의 계보를 이을 적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의 이면에는 짙은 어둠도 있었다. 명실상부한 롯데 ‘에이스’로 발돋움하려는 박세웅 앞에 놓인 여러 불안 요소들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1. ‘버두치 리스트’ 피해갈 수 있을까
‘버두치 리스트’는 2008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SI)’의 칼럼니스트 톰 버두치가 발표한 이론이다. ‘100이닝 이상 투구한 만 25세 이하 투수들 중 전년도 대비 30이닝 이상 더 많이 투구한 선수들은 다음 시즌 부상 혹은 부진 확률이 급격하게 높아진다’는 내용으로, MLB에서는 상당히 높은 적중률을 바탕으로 신뢰도를 높여가고 있다.
KBO리그에서도 지난 시즌 8년 만에 복귀한 조정훈을 비롯 한화 이태양, kt 주권 등 ‘버두치 리스트’에 오른 뒤 부상과 부진에 시달린 경우가 적지 않다. 여러 매체에서 분석한 결과, KBO리그에서의 적중률 역시 무시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다.
박세웅은 지난 시즌 ‘버두치 리스트’에 오른 대표적인 선수 중 한 명이다.
박세웅은 2017시즌 정규시즌에서 총 171 1/3이닝을 소화했다. 직전 시즌(139이닝)에 비해 32 1/3이닝 늘어난 수치다. 투구수는 2812구로 직전 시즌(2549)에 비해 263구 늘어났다. 만 22세의 어린 투구에게는 몸에 무리가 올 수 있는 이닝 상승폭이다.
실제 박세웅은 지난 시즌 전반기와 후반기의 성적이 큰 차이를 보였다.
전반기 17경기 105 2/3이닝을 던져 9승 3패 ERA 2.81로 리그 정상급 성적을 거뒀지만, 후반기에는 11경기 65 2/3이닝동안 3승 3패 ERA 5.07로 상당히 부진했다.
전반기에 많은 이닝(리그 5위)을 소화한 탓인지 어깨에 피로가 누적되었다는 평가. 시즌 막바지에는 구속도 떨어지는 등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박세웅은 정규시즌이 끝난 뒤에도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4이닝 85구를 던졌고, 시즌 종료 뒤에는 APBC 대표팀에 차출되어 결승전에서 3이닝 68구를 던졌다. 급격히 늘어난 이닝과 투구수, 그리고 부족한 휴식은 박세웅의 2018시즌을 위협하는 가장 큰 불안 요소다.
#프로 데뷔 후 첫 포스트시즌 무대에 선 박세웅
#2. ‘늘어난 포크볼’ 부작용 없을까
포크볼은 속구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다가 홈플레이트 앞에서 뚝 떨어지기에 타자의 헛스윙을 쉽게 유도할 수 있다. 상대 타자가 연거푸 방망이를 헛돌리며 삼진을 당하는 모습에 쾌감을 느낀다는 포크볼러들도 있다.
하지만 그 달콤함 이면에는 어두움도 있다. 포크볼은 여타 구종과 달리 공이 던지는 도중에 손에서 빠져버리면서 충격이 고스란히 팔꿈치에 전달된다. 그만큼 팔꿈치 부상 위험성도 높다.
빼어난 포크볼의 위력을 과시하다 팔꿈치 부상을 당한 조정훈과 이동현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으로 눈을 돌리면 이용찬과 이태양 등이 많은 포크볼을 던진 끝에 팔꿈치 부상을 당했다.
물론 이에 대해 부정하는 포크볼러들과 코칭스태프들도 적지 않지만, 이들 역시 포크볼을 많이 던질 경우 속구 구속이 저하되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는 편이다. '악마의 유혹'이라는 표현처럼 압도적인 위력만큼 위험성도 높다는 의미다.
박세웅 역시 포크볼의 부작용에서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데뷔 시즌 포크볼을 거의 던지지 않았던 그는 2016시즌 포크볼을 장착했고 지난 시즌부터는 아예 주무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데뷔 시즌 0.7%에 불과했던 그의 포크볼 비중은 2016시즌 14.6%, 지난 시즌 22.8%로 급격히 늘어났다. 이는 규정이닝 투수 중 단연 가장 높은 수치. 2위인 차우찬(18.8%)에 비해서도 상당히 높다.
시즌별 투구 이닝의 급격한 증가와 휴식 부재로 피로가 누적된 그에게 ‘포크볼 부작용’은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포크볼이 부상의 원흉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지난 시즌 이상으로 포크볼의 비중을 높이는 것은 위험할 가능성이 높다.
# '9K'를 잡아낸 박세웅
#3. 2017시즌의 행운은 계속 될까?
박세웅의 지난 시즌 성적은 훌륭했다. 만 22세의 어린 투수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활약을 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승+3점대 ERA’는 결코 아무나 올릴 수 있는 성적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 시즌 박세웅의 성적에는 개인의 실력 뿐 아니라 팀 수비의 도움과 일정 이상의 ‘운’도 상당 부분 작용했다. 일반적으로 주목받는 다승-평균자책점(ERA) 기록 외에 세부 기록 지표를 살펴보면 올 시즌 그의 불안 요소가 드러난다.
가장 주목할 지표는 FIP(Fielding Independence Pitching, 수비 무관 평균자책점)다. 지난 시즌 그의 ERA는 3.68로 리그 8위지만, FIP는 5.07로 규정이닝을 채운 리그 선발 투수 19명 중 16위에 그쳤다.
FIP와 ERA의 차이 역시 리그에서 가장 높았다. 그의 낮은 ERA에는 번즈 등이 합류하며 강화된 수비와 ‘운’의 도움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의 BABIP(인플레이타구의 피타율) 역시 16시즌 0.357에서 지난해에는 0.290으로 급감했다.
LOB%(Left On Base Percentage, 잔루처리율) 역시 비슷한 신호를 보낸다. LOB%는 선수마다 다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대부분의 투수들은 리그 평균에 가까운 수치를 기록하게 된다.
결국 단기적으로 LOB%이 높은 선수의 경우 장기적으로 LOB%가 평균에 가깝게 돌아가며 ERA가 사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난 시즌 박세웅의 LOB%는 78.3%로 상당히 높았다. 이는 규정이닝 투수 중 가장 높은 수치. 리그 평균(68.8%)은 물론이고 그의 통산 기록(69.7%)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다. 올 시즌 그의 LOB%가 평균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의 ERA 역시 급격히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지난 시즌 그의 놀라운 성적에는 어느 정도 팀 수비과 행운의 조합이 개입되어있다는 뜻. 지난해 만큼 행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성적 하락 가능성도 상당하다. 그가 극복해야 할 불안요소는 피칭 이닝 증가와 포크볼의 부작용 뿐은 아니다.
#박세웅을 돕는 신본기의 호수비
‘안경잡이 에이스’ 재림? 롯데 벤치의 관리에 달렸다
올 시즌 박세웅에게 지난해 이상의 활약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일 수 있다. 투구 이닝 증가와 포크볼 구사율의 급격한 상승이 위험 요소인데다, 지난 시즌 성적에 자신의 실력 이외의 요소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만 22세 시즌을 맞는 박세웅은 앞길이 창창한 투수다. 잠재력은 충분하고, 지금 당장 팔꿈치나 어깨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불안 요소들을 제거하고 '에이스'로 우뚝 설 기회는 충분하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롯데 벤치의 세심한 관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이닝과 투구수다. 앞서 살펴봤듯 박세웅은 KBO리그 내 만 25세 이하 투수 중 가장 많은 이닝과 투구수를 기록했다.
매 시즌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이닝과 투구수의 급격한 증가는 부상 위험성을 높일 수 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페이스로 계속 던지게 하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롯데는 박세웅에 앞서 두 명의 ‘안경잡이 에이스’를 혹사 끝에 일찍 잃어버린 아픈 기억이 있다.
고 최동원 감독과 염종석 코치는 현역 시절 롯데의 우승을 이끌었지만 혹사로 인해 그 재능을 오랜 기간 발휘할 수 없었다. 시대가 달라진 상황에서 박세웅 마저 같은 실수로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앞선 두 번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3번째 '안경 에이스’는 미처 꽃을 피우기도 전에 스러질 수도 있다.
지난 시즌 주무기로 활용한 포크볼 역시 마찬가지다. 포크볼의 부상 위험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어린 나이부터 지나치게 포크볼 의존도를 높이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포크볼의 구사 비율을 의식적으로 줄이거나, 그의 몸 상태에 대한 점검과 관리를 철저히 해서 혹시 모를 부상 가능성을 철저히 낮춰야 한다.
박세웅은 단순히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가 아니다. APBC 결승전에 선발 투수로 나설만큼 유망한 투수이자, 차후 국가대표팀을 이끌 잠재력을 갖춘 미래 ‘에이스’다. 올시즌 박세웅에게 절실한 것은 지난 시즌 이상 활약해주기를 바라는 과한 기대보다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세심한 관리다.
[기록 출처: 야구기록실 KBReport.com, KBO 기록실, STATIZ]
계민호 기자 / 정리 및 편집: 김정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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