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T 리포트
영감님 전성시대, 최영필-손민한 두 남자의 생존 비법
2015-07-14 화,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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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Report
전성기로부터 10년, 그 남자들이 살아남는 법
야구는 다른 구기 종목에 비해 은퇴 연령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그런 야구에서도 불혹이 넘은 나이까지 현역 생활을 하는 선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서른이 넘어서면 근력과 스피드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는 해가 지날 때마다 급격히 진행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야구 선수들은 30대 중반 즈음이 되면 진지하게 은퇴를 고민하게 된다. 특히 어깨를 소모해야 하는 투수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KBO리그에서 만으로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 생활을 이어간 투수는 채 15명도 되지 않는다. 그만큼 ‘불혹’이란 나이는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나이다.
하지만, 여기 만으로 마흔이 넘은 ‘팔팔한’ 노장 두 명이 있다. 1997년 프로에 입단, 프로 19년차 베테랑인 최영필과 손민한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최고 전성기는 바로 2005시즌. 전성기가 벌써 10년이나 지났지만, 이들은 여전히 리그 정상급 선수로 군림하고 있다.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수준을 넘어서서 팀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2015/7/13일 기록 기준)
이들은 어떻게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리그를 호령할 수 있는 것일까?
2005시즌, 그들이 가장 빛나던 시기
최영필에게 2005시즌은 잊을 수 없는 해다. 이전까지 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2005시즌에는 당당히 한화의 주축 투수로 우뚝 섰다. 데뷔 후 8년간 단 한 번도 5승을 넘지 못했던 그는 2005시즌 데뷔 최다승인 8승을 기록했고, 생애 첫 2점대 ERA도 달성했다. 아직까지도 그가 2005시즌 기록했던 ERA, 승리, 이닝 기록은 그의 커리어 하이로 남아있다.
포스트시즌에서의 기록도 화려하다. SK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10 2/3이닝을 3실점으로 틀어막은데 이어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선발로 등판해 7이닝 1실점(비자책)으로 맹활약했다. 당시 중견수 데이비스의 치명적인 실책으로 1대0 패배하며 패전의 멍에를 썼지만, 그의 눈부신 호투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손민한의 2005시즌은 더욱 압도적이다. 2005시즌의 손민한은 다승 1위, ERA 1위를 기록하며 당당히 정규시즌 MVP를 차지했다. 2002~2004시즌을 합친 16승보다 많은 승수를 한 시즌에 기록했고, 자신의 ERA 기록(2004시즌 2.73)도 갈아치웠다.
롯데가 리그 5위에 머무르며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에이스’의 표본과도 같았던 그의 눈부신 피칭은 암흑기 롯데 팬들의 몇 안되는 위안거리였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팀이 배출한 최초의 정규시즌 MVP라는 것만 보아도 당시 그의 위상을 알 수 있다. 2012시즌 박병호가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기 전까지, 손민한은 유일한 ‘포스트시즌 실패 팀의 정규시즌 MVP’였다.
2015시즌, 다시 찾아온 전성기
그리고 무려 10년이 지났다. 흔히들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 10년. 긴 시간이 지났지만, 이들의 활약은 세월을 잊은 듯하다.
최영필은 우여곡절 끝에 전성기를 되찾았다. 한화에서 2010시즌을 마친 뒤 ‘FA 미아’가 되어 은퇴 위기에 놓였지만, 일본 사회인리그에서 뛰며 야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결국 2012시즌 SK와 계약하며 다시 프로생활을 시작했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2012시즌 ERA 4.58, 2013시즌 ERA 6.23에 그치며 팀에서 방출되었다. 그리고 어렵게 테스트를 거쳐 신고선수로 합류한 팀이 바로 KIA. 최영필은 KIA에서 다시 꽃을 피웠다.
2014시즌 중반 1군에 콜업된 최영필은 연일 뛰어난 투구로 불펜을 지켰고, 3점대 ERA에 두 자리 수 홀드를 기록하며 제 몫을 다했다. 올 시즌에도 그의 활약은 변함이 없다. 3.62의 준수한 ERA에 6홀드를 기록하고 있다. 35경기에 나서 블론세이브는 단 하나. 그는 현재 KIA가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 중 한 명이다.
손민한의 사연도 만만치 않다. 2005년부터 2008시즌까지 4시즌 연속 10승을 달성하는 등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지만, 2009시즌 이후 어깨 수술을 받으며 2010, 2011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결국 손민한은 2011시즌 종료 이후 롯데에서 방출되고 말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그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13년. NC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선수협 역시 비리 파문을 일으켰던 그를 용서하며 두 번째 기회를 얻게 됐다.
손민한은 2013, 2014시즌 3점대 ERA를 기록하며 부활 기미를 보이더니, 올 시즌에는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올 시즌 성적은 13경기 8승 4패, 68 2/3이닝 ERA 3.80. 팀내 다승 2위, 이닝 3위를 기록하고 있고,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은 1.63으로 NC 투수들 중 2위에 올라있다.(1위 해커: 2.89) 불혹을 넘긴 나이에, NC의 핵심 선발 투수로 우뚝 섰다.
부활의 비결 – 칼날 제구력
이들이 불혹을 훌쩍 넘겨서도 여전히 각 팀의 핵심 투수로 자리잡고 있는 비결은 바로 ‘제구력’이다. 투수들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이지만, 동시에 대부분의 투수들이 제대로 갖추지 못한 능력. 이들은 세월이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속과 구위를 제구력을 통해 보완하고 있다.
이들의 볼넷 비율은 리그 전체에서도 가장 뛰어난 축에 속한다. 최영필이 9이닝당 0.72개의 볼넷만을 내주며 리그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손민한도 9이닝당 단 1.18개의 볼넷만을 허용하며 리그 3위에 올라있다. 맞아서 내보낼지언정 걸어서 1루 베이스를 밟게 놓아둘 수는 없다는 의지가 돋보인다.
피IsoD기록을 통해서도 이들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2015시즌 최영필의 피IsoD는 0.020으로 리그 1위, 손민한의 피IsoP는 0.025로 리그 2위 기록이다. 안타 없이 출루시킨 주자들의 비율이 리그 전체에서 가장 적다는 뜻이다.
뛰어난 제구력 덕에 따라오는 부가 수입도 있다. 투구수가 늘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볼넷. 볼넷을 허용한다면 4개 이상의 공을 던지고도 아웃카운트를 늘리지 못한다. 하지만 칼날 제구력을 자랑하는 최영필과 손민한은 뛰어난 제구력을 통해 이닝당 투구수를 최소화했다.
최영필은 이닝당 14.3구만을 던지며 리그에서 가장 효율적인 투수로 등극했고, 손민한 역시 한 이닝을 마치는데 필요한 공이 단 15개밖에 되지 않았다. 제구력으로 이름높은 선발 윤성환(15.5구), 유희관(15.6구)보다도, 리그 최정상급 불펜인 정우람(15.7구), 조상우(15.8구), 안지만(16.0구)보다도 효율적인 투구를 한 것이다. 이들은 뛰어난 제구력으로 이닝당 투구수를 절감하고, 이를 통해 체력을 아끼며 불혹의 나이를 극복해내고 있다.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불혹의 노장, 이들의 ‘무한 도전’
세월도 비껴간 듯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최영필과 손민한. 이들의 다음목표는 무엇일까?
[사진: KIA 타이거즈, NC 다이노스 홈페이지]
이들의 세월을 잊은 듯한 거침없는 행보의 이면에는 목표에 대한 간절함이 있다. 불혹이 넘은 나이이기에 한 경기, 공 하나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당장 은퇴를 선언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 이들의 목표는 무엇일까?
최영필의 목표는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그의 목표는 아들과 함께 프로에서 뛰는 것.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한 만큼 어려운 목표다. KBO 역사상 부자가 동시에 프로에서 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올해 제물포고를 졸업한 그의 아들 최종현은 프로 지명에 실패했고, 최영필의 모교인 경희대에 입학했다.
최종현이 대학을 졸업한 뒤 프로에서 뛰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은 앞으로 4년. 만 41세인 최영필이 만 45세가 될 때까지 프로 생활을 해야한다. KBO 최고령 등판 기록인 송진우의 43세 2개월 10일을 무려 2년 가량 넘어서야만 부자가 함께 프로에서 뛸 수 있다. 결코 쉽지 않은 기록이지만, 불혹의 나이에 제 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최영필이기에 일말의 기대감을 품게 된다.
손민한의 목표는 풀타임 선발. 어찌보면 상당히 흔한, 대부분의 선수가 인터뷰에서 흔히 말하곤 하는 목표다. 하지만 손민한의 나이를 생각해본다면, 결코 쉽지 않은 목표이기도 하다. 만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선발 투수로 풀타임을 소화했던 투수는 송진우 단 한 명뿐이다.
하지만 손민한이 누군가. 2000년대 초반 ‘우완 트로이카’를 일으켰던 주역이자, 통산 120승을 달성한 선수다. 시즌이 절반 이상 지난 현재 시점에서 보면, 손민한의 목표 달성은 충분히 가능해보인다. 4월과 5월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기는 했지만, 부상이나 부진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거른 적은 없다. 소화 이닝도 68 2/3이닝으로 규정이닝(79이닝)과의 차이가 크지 않다.
송진우 이후 첫 불혹의 풀타임 선발투수를 향해 전진하고 있는 단계를 넘어 KBO 최고의 불혹 10승 투수까지 가시권에 들어온 상황. 만 39세의 송진우가 2005시즌 11승을 거둔 적은 있지만, 만으로 마흔이 넘은 투수가 10승을 달성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야말로 ‘불혹의 전설’을 써내려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결코 쉽지 않은 목표이지만, 이들은 계속해서 전진하고 있다. 불혹을 넘어선 나이에도 뚜렷한 목표의식과 칼날 같은 제구력을 바탕으로 목표에 도전하고 있는 최영필과 손민한. 이들의 세월을 잊은 듯한 투구는 리그의 젊은 투수들에게도 큰 자극을 줄 것이다. 개인의 목표를 넘어 리그 전체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의 ‘무한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계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