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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고등학교'는 훈련방식이나 김성근 한화 감독이 선수들을 대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신조어다.
그런데 감독(=선생님)의 다소 무리한 지시에 대해서도 선수들(=학생들)이 철저히 순응하는 '한화 고등학교'에 대해서 그걸 구시대적이라고 비판하고 질책하기에 앞서, 그게 21세기 개명천지(開明天地)에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 대답이 김성근 감독의 존재와 특유의 리더십이란 것에 김감독을 비판하는 사람마저도 이견이 없다.
그런 '한화 고등학교'는 시대와 맞지 않으니 폐교(廢校)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누가 그런 말을 굳이 힘주어 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김감독의 퇴장과 함께 사라져 갈 운명이다. 그래서 필자에게는 그리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기에 함께 하는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한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스포츠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까지 영감(靈感)을 주고 있는 김성근의 리더십을 필자는 후배 감독 누군가에 의해 전승(傳承)되어야 할 이 시대의 '무형문화재'로 평가한다. 그러나 그 리더십을 가능하게 한 것이 평생 동안 하루 종일 야구만 생각해온 삶이었기에, 그와 같은 삶을 똑같이 살아주기를 이 시대의 젊은 감독들에게 요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리더십에 의해 운영되는 '한화고등학교'도 앞으로 우리 야구계에서 다시 재현(再現)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하기에 필자는 그런 '한화 고등학교'를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 노인(老人)이 평범한 나무 한 그루도 소중하게 바라보는 그 눈빛으로, 그리고 중년(中年)의 아들이 연로한 아버지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바라보는 그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무를 한참 동안이나 보고 계셨던 노(老) 교수님
90년대 후반, 필자가 어떤 대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 한 학과의 교수님 전원과 학생들 50명 정도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2박3일의 일정 중에서 둘째 날에 다른 조직과 함께 개최한 공식적인 회의 하나 빼고는, 그 앞 뒤로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에 있는 유명한 사찰 같은 곳을 둘러봤다. 그런데 같이 간 교수님 중의 한 분은 당시 60대 후반으로 정년퇴임을 한 상태였고, 가끔씩 학부나 대학원 학생들에게 특강을 해 주시던 분이었다.
어떤 사찰을 둘러보던 중, 그 교수님이 아름드리 노송(老松) 하나에 손을 대고, 한참 동안이나 꼭대기 쪽 나무 가지를 올려다 보고 계신 것을 목격하고, 다가가서 그 교수님께 물었다.
"교수님 무얼 보고 계십니까?"
"응, 나무 보고 있지. 내가 이 나무를 앞으로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거던...."
평범했던 이 대화 내용을 그 후로 나는 잊고 살았는데, 그로부터 몇 달 뒤 겉으로는 정정해 보였던 그 교수님이 지병을 앓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얼마 후 돌아가셨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한화 고등학교'라는 비아냥이 섞인 비판
김성근 한화 감독에 대해서는 뜨거운 찬사와 격렬한 비판이 공존한다. 그의 불펜 투수 운용에 대한 비판과 함께 가장 많이 제기되는 것 중의 하나가 '한화 고등학교'라는 비판이다. 우리나라에서 프로야구 선수나 감독 모두 공식적으로는 '개인사업자'로서 동등한 입장인데, 김성근 감독은 마치 선수들을 고등학교 학생인 것처럼 대한다는 일종의 비아냥성 신조어다.
이런 비판은 단지 포털 사이트 기사의 댓글 논쟁에서 뿐만 아니라, 각종 매체의 공식 칼럼이나, 공중파의 스포츠 관련 프로그램에서도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 KBS 1의 "스포츠 이야기 운동화 2.0"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성근 감독 특집'을 할 때도 이 주제를 다루었으며, 특히 그 특집에서 어떤 젊은 축구 해설자는 김성근 감독이 선수들을 대하는 것을 듣고는 "프로 세계에서 어떻게 그런게 가능하냐?"는 듯, 이해 자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방송 내내 짓고 있었다.
시대의 변화 - 조직보다는 개인의 개성
1980년대 이전까지 우리 사회는 스포츠 분야 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른 모든 분야에 상명하복 문화가 존재했다. 위에서 까라면 군말없이 깠다. 대통령이 경호실장을 폭행하고, 대기업 회장이 사장급 임원의 '조인트'를 깠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런 시절의 끝물 무렵인 1991년에 대학생이었던 필자가 어떤 고등학교에 시험을 치러 갔다가, 시험 끝난 후 그 학교의 운동부원 10여명이 운동장 구석에 얼차려 자세로 엎드려 있고, 선배로 보이는 운동부원이 몽둥이로 한 사람당 십여번 넘게 엉덩이를 때리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시험 끝내고 나가던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있는데도 태연하게 그러고들 있었다. 필자와 몇몇 사람들은 좀 충격을 받아서 한참을 보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원래 운동부는 저런 거야'라고 생각들을 하는 건지, 아무렇지도 않게 스윽 한 번 쳐다보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90년대 중반에 'X세대'라는 신세대가 우리 사회에 등장했고, 그들의 특징은 탈권위주의, 자유분방한 태도,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마인드 등등이었다.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그 세대의 문화적 선구자였으며, 90년대 중 후반에는 스포츠계에서도 톡톡 튀는 '앙팡테러블' 축구 선수 고종수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우리 사회의 문화도 많이 바뀌었고, 운동 선수들의 문화도 많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 직장에서 상급자가 하급자의 따귀를 때리거나 조인트를 까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며, 만약 그런 행동을 하면 바로 경찰서 행이다. 프로는 물론이고 학원 스포츠의 운동부에서도 적어도 남들 보는 앞에서는 감히 얼차려나 폭행을 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한화 고등학교"에서는 비록 폭행은 없을지라도 이런 시대의 흐름과는 맞지 않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경기에서 패배하고 그 경기에서 결정적인 실책을 한 선수는, 미처 퇴장하지 못한 관중들이 보고 있는데도, 주현상 같은 신인 선수 뿐만 아니라 정근우 같은 고참 선수도 펑고를 몇 백개씩 받는다. 그거 다 받고 나면 그 선수는 그 날 경기의 피로까지 겹쳐서 거의 초죽음이 된다.
그리고 이종환 같은 선수는 서울 원정 경기를 앞두고 특타 훈련을 마친 후, 함께 훈련한 일행이 경기가 있는 목동 경기장으로 버스로 이동할 때 김성근 감독이 이종환만 태우지 않고, "경기장까지 뛰어와"라고 지시했을 때, 경기 시작 전까기 얼마 남지 않은 그 촉박한 시간을 맞추기 위해 5Km가 넘는 거리를 진짜로 뛰었다. 군말과 불평 하나 없이 뛰었다.
비단 이런 특별한 상황 뿐만 아니라, 원정 경기가 있을 때 주변 학교 운동장을 빌려 특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다른 팀들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다. 마무리캠프와 스프링캠프의 살인적인 일정 또한 마찬가지다.
21세기 대명천지(大明天地)에 '한화고등학교'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런 것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한화 고등학교'니 '구시대적 독재'니 심지어 김성근 감독이 재일교포 출신임을 겨냥해 '군국주의자'라고 비판과 비난을 하지만, 필자는 보여지는 모습 그 자체에 대한 찬반이나 평가보다도, 도대체 개명천지(開明天地)인 21세기에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를 먼저 묻고 싶다.
'한화 고등학교'의 학사 일정이 적어도 내부적으로는 별 잡음없이 운영되는 것은 오로지 김성근 감독이라는 행동파 교장(校長)의 존재 때문이다.
(1) 특타 훈련 후 선수들과 함께 손수 공을 줍고, 선수들에게 점심 시간도 있는 둥 마는 둥 훈련시킬 때, 자신도 예외 없이 늦은 점심을 간략한 우동 같은 걸로 대충 때우는 솔선수범 (2) 향상욕구가 강하고 야구천재인 이용규마저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미세한 타격폼의 변화를 잡아내고 고쳐줄 수 있는 그의 코칭 능력 (3) 그동안 맡은 팀마다 포스트 시즌을 가게 만들고, SK 때는 우승도 3번 한 그동안의 업적이 뿜어 내는 후광(後光)
(4) 김성근 감독의 나이가 70대 중반인데, 나이 많은 사람을 존중하는 한국 사람 특유의 문화 (5) 그가 예전에 지도한 많은 선수들이 그를 스승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고, 그가 시키는 대로만 군말없이 훈련하면 연봉도 오르고 FA 대박도 쳤던 여러 사례들 (6) 많은 말을 하지는 않지만 선수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려는 의지가 느껴지고, 자주 표현하지는 않지만 속깊은 정(情)을 느끼게 하는 그의 행동 등등이 한꺼번에 어우러져 선수들이 아무 불만없이 그의 다소 무리한 지시사항마저도 진심으로 따르게 하는 것 같다.
하루 종일 , '평생 동안' 하루 종일 야구만 생각해온 '불가능'에 가까운 삶
그런데 가장 결정적인 것은 니시모토 현 한화 투수코치의 말이다. 일본의 대투수이자 명코치출신인 그가 김성근 감독의 요청으로 한화 코치로 부임하고 훈련 캠프를 같이 보낸 후 보인 첫 반응은 "김성근 감독은 야구 외에는 도통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는 분"이라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야구 생각만 한다는 뜻이다. 그 자신도 평생 야구만 했을 것 같은데, 그런 니시모토 코치의 눈에도 김성근은 별종(別種)으로 보인 모양이다.
2000년 즈음, 필자가 서두에 언급한 대학교에서 일하고 있었을 때, 정년 퇴임을 몇 년 앞둔 시니어 교수님과 단둘이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교수님은 당시 60대 초반이었는데, 자신의 학문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고, 학계에서 그리도 갖기 어렵다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학설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교수님은 자신의 전공과 학문보다도 사진 찍는 걸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 당시에도 휴일이면 사진기를 들고 갈대 숲이나 깊은 산속 같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정년 퇴임 후의 꿈이 그렇게 사진기를 들고 사진 찍으며 시골을 돌아다니다가, 어여쁜 시골여인을 만나 풋풋한 사랑을 다시 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15년 정도 세월이 흘렀는데 지금 정말 그러고 계신지는 모르겠다.
필자는 한 때 건설현장 잡역부로 전국을 다니면서 일한 적이 있는데, 제주도 신축 건물 공사현장에서는 통풍용 배관 작업팀의 일원으로 일했다. 10명 조금 넘는 우리 팀은 아파트 한 채를 빌려서 거기서 같이 지냈는데, 50대 중반의 팀장이 리더였다. 그는 전국 건설현장에서 현장 배관 설비 분야의 베테랑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팀장 또한 위의 교수님처럼 자신의 일인 배관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바다낚시였다. 1주 또는 2주에 한번씩 주어졌던 휴일만 되면 새벽부터 팀장은 보이지 않았다. 제주도 바닷가 어딘가에서 또는 작은 배를 빌려 바다낚시를 하고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리고 평소에도 일 끝내고 밤에 숙소에서 휴식을 취할 때면 배관에 대한 생각을 하기 보다는 바다낚시 관련 잡지 같은 걸 읽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다. 직업으로 하는 일과 좋아하는 취미활동이 분리되어 있다. 설사 하루 종일 학문을 생각하고, 하루 종일 배관을 생각하고, 하루 종일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게 길어봐야 10년에서 20년 정도로 그친다. 성인이 된 후 40년 50년, 평생 동안 그러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요즘 필자 또한 일은 일대로 하고, 정작 제일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은 한화 야구다. 일을 할 때 보다 한화 야구를 볼 때, 특히 한화가 이길 때 더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김성근은 별종이다. 하루종일 자신의 직업인 야구 생각만 해 왔단다. 그것도 1~2년이 아니라 '평생동안' 하루종일이다. 그러니 심할 때는 1년에 집에 들어가는 횟수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고, 그의 딸들이 그에게 "집에 자주 놀러오세요"라고 말했다는 것은 유명하다.
그렇게 평생을 야구에 미쳐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고, 그런 열정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에, 우리보다 야구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일본 야구의 전설 출신이 그의 지도법을 배우기 위해 이국(異國) 땅에서 살고 있기도 한다. 이러니 동종 업계의 까마득한 후배인 선수들은 감히 반항할 생각조차 못하고, 그의 무리하게 보이는 지시에도 복종하고, 심지어 그 중 많은 선수들은 진심으로 따르고 존경하고 있는 것이다.
구시대적인 것인가? 소중한 무형문화재인가?
우리 사회는 오랜 역사동안 개인보다 단체나 조직을 우선시하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십년을 거치면서 특히 민주화 운동을 경험하고 난 후에는 급속도로 개인의 개성과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요즘 직장 상사들은 부하 직원에게 사적인 술자리에서는 몰라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반말을 함부로 못 한다.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한화 고등학교' 같은 훈련 방식은 당연히 많은 사람들에게 구시대적인 것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야구계의 트렌드도 큰 틀에서 보자면 이전의 '감독야구'에서 점점 단장과 선수에 초점이 맞춰지는 야구로 변해가고 있다. 온전한 모습 그대로의 메이저리그식 단장야구나 선수야구는 한국의 서열문화와 학원 스포츠 선후배 관계로 인해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야구계의 큰 흐름은 분명 그렇다. 특히 넥센에서 모범을 보이고 성공을 거둔 후, 야구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해박한 지식까지 겸비한 프런트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이고, 그에 따라 한국식 감독야구의 비중은 점점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감독야구'의 진수인 김성근 감독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의해 운영되는 '한화 고등학교'를 단지 구시대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 물론 그 훈련방식 등 겉으로 보이는 모습 자체는 몇 십년 전의 그것과 비슷해 보이기에 구시대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필자는 다른 측면에 주목하고 싶다.
조선 시대에 유행했던 탈춤이나 종묘제례악이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빛을 잃었지만, 요즘 그걸 '구시대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보존하고 간직해야할 소중한 무형문화재로 보고 있다. '한화 고등학교' 또한 오로지 김성근 감독의 존재 때문에 가능한 유일하고 독특한 이 시대의 '무형문화재'다.
신진 감독들의 대표격이자 "염갈량"으로 일컬어지는 염경엽 넥센 감독도 김성근 감독의 훈련 방식이나 지도 방식에 대한 평가를 주문 받고선, 그것에 대해 평가를 하기 보다는 "내가 아마 그런 지시를 했더라면 선수들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지금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 정도의 혈기방장한 젊은 감독이 김성근과 같은 능력과 경력을 갖추지 못한 채로, 현재 김성근이 대하는 방식과 겉모습으로는 똑같은 방식으로 선수들을 대한다면, 그 선수들의 반발과 항명을 불러올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 젊은 감독이 개교한 고등학교는 오래 못 가고 폐교(廢校)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김성근의 리더십과 '한화고등학교'는 대체불가능하고, 흉내내기도 어렵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 시대의 무형문화재다.
또 다른 '김성근'이 출현하기를 고대한다.
'김성근 리더십'은 이제 야구계나 스포츠계를 넘어 사회적인 신드롬이 되어 있다고 본다. 특타 토스를 직접 올려주고 펑고 배트를 직접 휘두르는 그의 솔선수범,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라는 말, 사(私)보다는 공(公)을 우선시하는 그의 일생 등이 우리 사회 대중들에게 깊은 울림이 되어 공명(共鳴)을 일으키고 있다. 아마도 정치권 등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 저런 리더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스포츠계의 리더십이 '사회적' 관심과 신드롬으로까지 된 것은 짧게나마 강력했던 히딩크 축구 대표팀 감독 말고는 딱히 더 생각나는 게 없다.
그래서 필자는 현재 또는 미래의 40~50대 젊은 야구 감독들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제 2의 김성근이 될 것을 꿈꾸라고 주문하고 싶다. 그런데 그건 그의 야구 스타일과 경기 스타일 그 자체를 복사하고 꿈꾸라는 뜻이 아니다. 스타일 자체는 메이저리그식 야구여도 좋고, 김성근식 관리야구가 아니라 자율야구여도 좋다. 그저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확대되어 스포츠계의 위상마저 높인 그의 리더십을 꿈꾸라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 최선을 다해 경기를 준비해서 경기에서 승리를 하고 수차례 우승도 하는 등등 좋은 커리어를 쌓고 (2)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서 평생 동안 끊임없이 야구 공부를 계속하고, 또 선수들 뿐만 아니라 각 부문의 코치들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코칭 능력도 향상시키고 (3) 선수나 코치들은 몰라도, 리더로서 조직을 책임지는 자기 자신은 사(私)보다는 공(公)을 우선시해서 하루 종일 야구와 맡은 팀만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한 2~30년 후 즈음에 김성근과 같이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가지는 지도자가 야구계에 또 다시 출현하기를 소망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의 야구 방식이 자율야구여도 좋고, 현재의 김성근식 감독야구여도 좋다. 다만 그가 다소 무리한 지시를 선수들에게 하더라도, 불복종 했을 경우 돌아올 불이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승복해서 따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지금 '한화고등학교'와 좀 다른 느낌일지라도 'LG고등학교', '롯데고등학교' 같은 걸 다시 보고 싶다. 그런 제 2의 김성근을 보고 싶다.
노쇠한 아버지의 남은 시간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바라보는 '한화 고등학교'
그러나 10년 후나 20년 후 아니 그보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야구계에 그런 감독이 다시 출현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 무엇보다도 니시모토 코치의 짧은 문구처럼 "하루 종일 야구만 생각하는 것" 그것 자체가 싫증을 잘 내고, 호기심이 많은 '인간'이라는 종족의 특성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필자는 김성근 야구를, 특히 그와 선수들이 함께 하는 춤사위와 같은 특타와 펑고를 이 글의 서두에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교수님이 노송(老松)을 보는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보고 있다. 그 교수님에게 주어졌던 몇 개월 보다는 길겠지만, 아주 길게 잡아도 앞으로 3~5년 정도밖에 더 보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김성근야구'를 직접 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리고 '한화 고등학교'를 날로 야위어 가는 내 아버지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보고 있다. 그러하기에 그런 특타 하나 하나 펑고 하나 하나가 소중하고, 그것의 별칭인 '한화 고등학교'가 비아냥이 아닌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필자에겐 다가온다.
한화팬들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이 소중한 한화고등학교의 학부형인 셈이다. 학부형들은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해 가르치는 선생님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기 마련이다. 한화고등학교는 교직원(코칭스탭)과 학생들(선수들) 뿐만 아니라, 학교에 애정을 갖고, 남부럽지 않은 좋은 학교가 되기를 바라며 응원하는 수많은 학부형들에 의해 더욱 발전할 것이다.
한화 고등학교가 우수한 성적을 내는 명문(名門)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사진: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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