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말 삼국지 시대를 주름잡던 조조가 유일하게 인정한 영웅이 있었으니, 바로 유비였다. 훗날 한중을 점령한 유비가, 지세의 이점을 활용하여 게릴라전으로 일관하자 한중 정벌에 나선 조조의 고민이 이만저만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식사에 닭죽이 나왔다. 조조는 사발 속에 담겨 있는 닭의 갈비뼈를 보자 떠오르는 것이 있어 상념에 잠겼다. 이 때, 조조의 측근 장수 하후돈이 조조에게 암구어에 대해 물으니, 조조는 무심코 계륵(鷄肋)이라 답변한다. 이에 참군종사였던 양수가 휘하의 군사들에게 철군 준비를 지시한다. 하후돈이 놀라 물으니, 양수는 태연히 대답했다.
“오늘 밤의 암호로 위왕께서 곧 군사를 철수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계륵은 먹기에는 고기가 없고 버리기에는 맛이 있어 아깝습니다. 지금은 진격해도 승리할 수 없고 후퇴하면 남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그렇다고 이곳에 머물러 있는 것도 무익하므로 빨리 돌아가는 편이 유리합니다. 곧 위왕께서 진지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닭의 갈비뼈를 이르는 계륵이라는 고사성어는 여기서 유래했다. 먹기에는 고기가 없고 버리기에는 맛이 있어 아까운 부위. 계륵은 남을 주기는 아깝고 가지고 있자니 별 도움이 되지를 않는 것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2015 프로야구에서도 이 고사는 유효하다. 다른 팀에 주자니 아깝고, 데리고 있으며 계속 기회를 주기도 애매한 그런 선수들이 있다.
2011년 LG트윈스는 넥센 히어로즈와 2대2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LG트윈스는 박병호와 심수창을, 넥센 히어로즈는 송신영과 김성현을 보냈다. 설왕설래가 있긴 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당장의 손익만 따지면 넥센의 손해라는 분위기였다.
LG 입장에서는 1군에만 올라오면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우타거포 유망주 박병호와, 연패에 허덕이던 심수창을 주고 즉시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마무리 송신영과 젊은 선발 김성현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트레이드는 KBO 사상 최악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김성현은 승부 조작 파문으로 영구 제명이 됐으며, 박병호는 리그 최고의 홈런타자가 됐다.
유망주 시절 기대치 이상으로 성장한 홈런왕 박병호 (사진: LG트윈스)
LG시절 박병호가 4년간 부여받은 641타수에서 만들어낸 홈런의 개수는 24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넥센으로 이적 후 박병호는 2011년을 13개의 홈런으로 시즌을 마무리 했으며, 이후 3년간 120개의 홈런을 만들어 냈다. 3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했으며, 2번의 리그 MVP를 수상하며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우타거포로 떠올랐다. 계륵 같았던 존재로 여겨진 우타 거포 유망주의 잠재력이 마침내 폭발한 것이다.
박병호의 경우, LG 시절 팀사정상 기대치에 비해 많은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케이스지만 각 구단에는 박병호 이상으로 기회를 제공했음에도 껍질을 깨지 못하는 선수들이 한 명쯤은 있다. 잠재력은 인정받지만, 터지지 않는 그런 선수들.
점점 연차만 늘어나고, 자신의 재능을 활짝 피우지도 못한 채 사라질 위기에 놓인 선수들이 많다. 유망주로 꼽히던 시절은 이미 지났으며, 병역문제를 해결하고도 터지지 않는 그들. 늙어가는 유망주, 우리는 그들을 노망주라 부른다.
85년생 김주형 (사진: KIA 타이거즈)
KIA 타이거즈에는 노망주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김주형이 있다. 그가 광주동성고에 재학하던 시절, 그에 대한 소문은 괴수에 가까웠다. 만루에서 고의사구로 내보낼 정도로 광주동성고의 배리 본즈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기대는 고스란히 프로 무대에도 이어져, 타이거즈는 김주형을 1차 지명한다.
그러나 김주형이 규정타석을 소화한 시즌은 단 한 차례도 없다. 그가 기록한 통산 타율은 0.215에 불과하며, 10년간 1314타수 동안 기록한 홈런은 40개에 불과하다. 통산 출루율도 0.276으로 난감한 수준. 나이도 어느덧 서른을 넘겼다. 과연 김주형은 부담감이라는 짐을 털어 버리고, 절실함으로 비상할 수 있을까?
85년생 김회성 (사진: 한화 이글스)
한화에는 김회성이 있다. 경성대학교 시절, 대통령기 준결승 경기에서 3연타석 홈런을 뽑아내기도 하는 괴력을 발휘하며, 당시 대회 홈런 2위를 차지했다.(1위 단국대 나지완) 덕분에 2009년도 한화 이글스에 1차지명으로 입단했다. 다만 대학을 졸업하고 입단하여서 85년생이란 나이에 비해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제 겨우 1군 384타수만을 소화했을 뿐이다.
그러나, 김회성에 대한 기대치에 비해 그간 성적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번 시즌 데뷔 첫두 자리 수 홈런을 치며, 거포 유망주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듯 보였으나, 6월 14일 이후 부상으로 1군에서 말소된 상태다. 그가 5년 동안 만들어 낸 홈런은 18개에 그쳤다. 통산 타율은 간신히 2할을 넘긴 0.203이다. 확고한 주전으로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 보여주어야 할 타이밍이다.
87년생 김재현 (사진: SK 와이번스)
SK 와이번스는 김재현이 아쉽다. LG와 SK에서 뛰었던 김재현(골든 글러브 3회 수상)과는 동명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으나, 성적은 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06년 SK 와이번스가 2차지명에서 전체 36번으로 지명했다. 그의 최고 장점은 빠른 발. 그러나 타격이 발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2013년 스위치 히터로 전향 후, 타격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2014시즌 이 후 성적은 좋지 못하다. 통산 도루가 33개로, 그가 기록한 통산 안타와 비슷하다.(통산 안타 35개) 그의 빠른 발은 분명 주목할 만 하지만, 타격이 갖춰주지 못하다면 그는 대주자로 기용될 수 밖에 없다.
88년생 최주환 (사진: 두산 베어스)
두산에서는 최주환을 꼽을 수 있겠다. 동성고등학교 시절 청소년 대표에 뽑히기도 하는 등, 잠재력은 충분한 선수. 최주환의 프로무대에서 성적이 나쁘지는 않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최주환은 총 490타수를 소화했는데, 기록한 타율은 0.280이다. 결코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썩 많은 기회를 얻지 못한 것도 사실. 두산의 두터운 야수진의 위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최주환의 타격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은 많지 않다. 수비가 다소 아쉽다는 평도 있지만, 타격이 약한 팀에게는 매력적인 선수이다. 트레이드 카드로도 매력적인 선수. 나이 또한 88년생으로 충분히 젊다. ( 2015 현재 0.221 /0.316/0.312 2홈런 13타점)
86년생 장진용 (사진: LG트윈스)
LG 트윈스는 투수 장진용이 아쉬운 상황. 2004년 1차 지명으로 LG 트윈스에 입단했다. 입단 당시 140km/h 중반 정도에 빠른 공을 던지며,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부상을 당하며 2008년까지 1군에 겨우 27경기에 나서며 55.2이닝 동안 6.95 ERA를 기록했다.
이후 5년의 공백 이후 제구력 위주의 피칭을 하며, 올해 처음으로 선발 첫 승을 거두며 많은 기대를 모았다. 4월 동안 4경기에 나서며 11.1이닝 동안 ERA 2.38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21이닝에서 ERA 8.57을 기록하며 좋지 못하다. LG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보였으나 7월 11일 이후 마운드에 올라서지 못했다.
88년생 이상화 (사진: 롯데자이언츠)
롯데에는 이상화가 있다. 올시즌 고교 시절 감독과 재회한 이상화가 선발투수로 확고히 자리를 잡을 것으로 보였지만, 장진용과 마찬가지로 4월 이후 성적이 많이 내려간 상황.(4월 성적 28.2이닝 ERA 3.77, 이후 ERA 10.90)
2007년 이재곤과 함께 많은 기대를 모으며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으나, 통산 ERA가 6.50으로 상당히 높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인 2006년, 청룡기 대회 최우수 선수로 꼽히며 기대를 한껏 모았지만, 올시즌 4월보다 좋았던 피칭이 없다. 아직 88년생이기에 더 지켜볼 가치는 있다.
87년생 백정현 (사진: 삼성 라이온즈)
통합 5연패를 노리는 삼성 입장에서 아쉬운 선수는 백정현. 2007년 2차지명 1라운드에서 뽑혔지만,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 언제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정규리그에서는 이렇다할 성적을 남긴 시즌이 없다. 좌완 계투조로 활용되지만 8년 동안 통산 ERA가 5.48로 상당히 높다. 150가까이 구속이 나오기도 했지만, 구속이 들쭉날쭉하며 일정한 기량을 유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이번 시즌도 26.2이닝 동안 ERA 4.73으로 평범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87년생 김영민 (사진: 넥센 히어로즈)
넥센 히어로즈는 김영민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김영민은 선발 10승은 충분히 가능한 재목으로 주목받았지만 결국 선발로 자리잡는 데 실패했다. 188cm/98kg의 건장한 체격과 리그 최고의 파이어볼러가 될 수 있을 정도의 하드웨어를 갖추었다. 실제로도 150km 이상의 속구를 쉽게 구사한다. 다만 좀체 잡히지 않는 영점( 4.73에 이르는 통산 BB/9)과 잦은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만약 강윤구가 돌아와, 김영민과 함께 포텐이 터진다면, 투수진이 약한 넥센에게는 최고의 시나리오. 터진다면 말이다.
85년생 모창민 (사진: NC 다이노스)
아직 신생팀인 NC와 kt에게는 고유의 노망주는 없다. 하지만 타팀에서 넘어온 노망주들은있다. 먼저 NC에는 20홈런 20도루 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 잠재력의 모창민이 있다. 2013년 SK에서 NC로 넘어온 후, 2014년에는 16홈런과 14도루를 기록하며 현실이 될 것처럼 보였지만, 이번 시즌 지독한 부진에 시달리며 포지션을 지석훈에게 뺏긴 상태다. (125타수 AVG 0.240 OPS 0.678)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예년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은 불행 중 다행
86년생 오정복 (사진: kt 위즈)
KT에는 이번 시즌 NC에서 KT로 트레이드 된 오정복이 있다. 2009년 2차지명에서 전체 53번으로 삼성에 입단한 오정복은 크게 주목 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실제로 2009년부터 그가 2014년까지 기록한 홈런은 2010년에 기록한 7개가 전부이다. 그러나 그 2010년에 오정복은 연타석 홈런, 연장전 결승 홈런 등 임팩트 있는 활약을 펼치며 순식간에 기대주로 부상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후 부진했다. 2011시즌 이후 신생팀 NC가 지명하며 NC 다이노스로 이적했다. 경찰청 공백이 예정된 그를 NC가 지명한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아해 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그에 대한 잠재력을 인정한다는 뜻. 그러나 전역 후, 2014시즌에도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2014시즌 69타수 16안타 AVG 0.232) 결국 이번 시즌 KT로 트레이드 됐다. 하지만 데뷔전에서 홈런을 기록하며 다시 임팩트 있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2015시즌 현재 0.277 65타수 18안타 OPS 0.828)
공자는 나이 서른을 이립(而立)이라 했다. 기사를 통해 언급한 대부분의 노망주들이 이미 서른 줄에 들어섰거나 앞두고 있다. 그들은 이제 프로선수로서의 삶에 있어 전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트레이드 마감 시한이 지나버린 올시즌은 어렵겠지만, 트레이드라는 기회를 통해 새로운 환경에서 제 2의 야구인생을 시작 할 수도 있고, 소속팀에 남더라도 절박함을 무기로 늙어버린 유망주의 껍질을 깰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그들이 계륵같은 노망주 신세에서 벗어나, 프로야구를 주름잡는 새로운 슈퍼스타로 거듭나길 바래본다.
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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