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프로야구의 이슈 메이커는 누가 뭐라해도 '한화 이글스'다. 만년 하위권이던 한화가 포스트시즌을 노리는 다크호스로 부상한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인데, 김성근 감독만의 독특한 경기 운영 스타일까지 겹쳐 많은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것은 한화만의 독특한 필승조 운용 방법. 최근 투수들의 보직 세분화가 이뤄지면서 필승조들의 역할이 ‘적은 점수차로 앞선 상황에서 1~2이닝을 막아주는 투수’로 한정되고 있지만, 한화는 필승조의 역할을 한정짓지 않고 있다.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필승조를 투입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어가고 있고, 큰 점수 차로 앞선 상황에서도 필승조를 등판시키곤 한다. 이러한 독특한 필승조 운용법으로 인해 현재 권혁은 92 ⅔이닝(순수 구원 1위), 박정진은 91⅔이닝(순수 구원 2위)을 던지며 2010시즌 SK 정우람 이후 5년만의 순수 구원 100이닝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시즌 초반 40일 가량 공백이 있던 윤규진(50 ⅔이닝, 순수 구원 14위)의 이닝수 역시 적다고 보기는 어렵다. ( 필승조의 한축인 윤규진은 어깨 충돌증후군으로 인해 8월 18일 1군에서 말소됐고 이후 그역할은 8월 14일 중간계투로 등판해 4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한 배영수가 대신할 예정이다. )
한화가 자랑하는 강력한 필승조 삼인방. 하지만 이들의 운용법에 의문을 품는 이도 적지 않다. [사진=한화 이글스]
그렇다면, 여기서 생기는 궁금점 한 가지. 많은 이들이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한 김성근 감독의 필승조 운용법은 효용성이 있었던 것일까? 과연 ‘야신’의 ‘도박’은 성공했을까? 만약 실패했다면, 그 해답은 무엇일까?
이 기사에서는 필승조 운용과 관련 가장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뒤지고 있는 상황], 그리고 [큰 점수차로 앞선 상황]에서 필승조를 투입했던 것에 대한 현재까지의 효용성을 확인해보고, 향후 필승조 운용 방식에 있어 개선점을 찾아보려 한다. (이하 기록은 8/17일 기록 기준)
지고 있는 상황에서의 필승조 투입 결과: 실패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필승조를 투입하는 이유는 상대의 흐름을 끊고 역전을 노리기 위함이다. 이기는 상황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필승조를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투입하는 목적은 단 하나, 승리. 따라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필승조를 투입하는 행위는 ‘반드시 이 경기를 잡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화의 도박은 성공률이 상당히 떨어졌다.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필승조를 투입할 경우의 승률은 고작 0.324. 한화의 시즌 승률인 0.495와 비교하면 현격하게 떨어지는 수치다. 간단히 말해, 한화의 무리한 필승조 투입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다.( 물론 무리라고 보이는 필승조 투입이 있었기 때문에 11승을 거둘수 있었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팀 승리에 있어 귀중한 자원인 필승조를 투입한 결과치고는 저조한 것도 사실이다.)
더 중요한 수치가 하나 있다. 한화가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필승조를 투입한 경기는 무려 34경기. 현재까지 치른 107경기의 1/3에 달하는 수치다. 한 마디로 한화의 필승조들은 사실상 추격조의 역할까지 담당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필승조 뿐만 아니라 추격조의 역할까지도 떠안아야 했던 한화의 필승조 삼인방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지쳐가고 있다.
시즌 초반인 5월까지만 해도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투입해 승리한 경기는 분명 적지 않았다. 5월까지의 승률은 무려 0.455.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의 승률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다. 김성근 감독 특유의 다소 무리해보이는 투수 운용은 시즌 초반 큰 성공을 거뒀고, 마리 한화의 상승세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시즌이 중후반으로 이어지는 여름에도 이 무리수를 이어간 것은 결국 한화에게 독이 됐다. 한화는 투수들이 지쳐갈 무렵인 6월 이후,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필승조를 투입하는 빈도를 더욱 늘렸다.
6월 7경기, 7월 9경기에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필승조를 내보냈고, 8월에는 14경기 중 7경기에서 무리수를 던졌다. 하지만, 6~8월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필승조를 투입한 23경기에서의 승률은 고작 .261. 필승조를 무의미하게 소모하는 경기만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필승조를 투입하는 ‘도박’은 팀의 승리를 가져오지도 못할 뿐 아니라, 선수 개인의 성적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아무리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해도, 이기고 있는 상황과 지고 있는 상황에서의 집중력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즌 ERA 2.90인 박정진은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할 경우 ERA가 3.45로 높아졌고, 권혁(시즌 ERA 4.47), 윤규진(시즌 ERA 2.66) 역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할 경우 ERA가 급상승했다.
한 마디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의 필승조 투입은 팀에게도, 선수에게도 별다른 이득을 주지 못하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큰 점수차로 리드 시, 필승조 투입 결과" 성공
일반적으로 필승조에 속하는 투수들은 경기 후반, 3점차 이내 리드시 등판시키는 경우가 많다. 1이닝을 투구한다고 가정할 경우, 홀드와 세이브 기록을 얻을 수 있는 점수차가 3점차 이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점 이상 앞선 상황에서 필승조를 투입하는 것은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고 다음 경기까지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김성근 감독도 인터뷰를 통해 수차례 그런 의도를 밝힌 바 있다.) 큰 점수차라 하더라도 경기 막판 분위기를 내줄 경우 이 여파가 다음 경기까지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화에게 큰 점수차에서의 필승조 투입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4점 이상 앞선 상황에서 필승조를 내보낸 21경기 중, 다음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 11차례다. 승률도 0.524로 한화의 시즌 승률인 0.491보다 뛰어난 수치다.
일반적으로 크게 리드하고 있는 경기에서 필승조를 소모하는 것은 ‘다음 경기를 생각하지 않는 무리한 운용’이라고 생각하지만, 승패 기록으로만 본다면 애초 의도대로 다음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큰 점수차로 앞선 상황에서 등판하는 것은 선수 개인에게도 성공을 안겨줬다. 넉넉한 리드를 안고 편안한 마음으로 투구한 덕인지, 큰 점수차로 앞선 상황에서 등판한 필승조 삼인방의 성적은 시즌 성적보다 훨씬 훌륭했다. 윤규진은 7경기에서 8 ⅔이닝을 던져 단 하나의 자책점도 허용하지 않았고, 박정진과 권혁도 시즌 ERA에 비해 1점 이상 낮은 ERA를 기록했다.
간단히 말해, 큰 점수 차로 앞선 상황에서 필승조를 투입하는 것은 상대팀의 기세를 꺾고, 필승조의 성적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해낸 셈이다. 표본이 충분치 않기에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2015시즌의 현시점까지는 한화가 ‘큰 점수차로 앞선 상황에서의 필승조 투입’을 통해 긍정적인 효과를 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너무 많은 역할을 소화하고 있는 삼인방, 추격조가 필요하다.
위의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필승조 운용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의 필승조 투입’이다. 한화의 필승조 삼인방은 단순히 승리를 지키는 역할뿐 아니라 역전의 발판을 놓기 위해 상대의 흐름을 끊는, 이른바 추격조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추격조 역할까지 소화하면서도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들이 추격조의 역할까지 떠맡는 것은 팀에게도, 개인에게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무리하게 이들을 투입했음에도 해당 경기에서 승리를 따낼 확률은 희박했고, 이런 등판들이 누적되며 필승조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다.
결국, 지금의 한화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제대로 된’ 추격조다. 뒤지고 있는 시점에서 상대의 흐름을 끊고 역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추격조가 필승조 삼인방의 짐을 덜어줘야만 한다. (물론, 이것은 김성근 감독이 '추격조'를 실제로 구성/운용할 의지가 있을때 가능한 이야기이다.)
시즌 초 필승조의 짐을 덜어줬던 김기현과 정대훈. 지친 필승조에게는 이들과의 역할 분담이 절실하다.
[사진=한화 이글스]
가장 먼저 떠오르는 후보군은 김기현(34.1이닝)과 정대훈(26이닝)이다. 이들은 시즌 초반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필승조 삼인방의 짐을 덜어줬고, 각각 2홀드씩을 올리며 승리조로도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김기현은 좌투수, 정대훈은 언더핸드 투수로 각각 좌,우타자를 상대로 등판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순위 싸움이 격화되기 시작한 6월 이후부터 이들의 등판이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고, 더불어 계투진에서 차지하는 이들의 지분도 현저히 축소됐다. 벤치가 당장의 1경기 역전승에 대한 욕심보다는 인내심을 가지고 이들이 책임지는 이닝을 좀더 늘려준다면 추격조의 역할을 일정 부분 수행해낼 수 있는 제 1 옵션으로 판단된다.
박한길, 김범수, 최우석. 풍부한 잠재력을 갖춘 이들도 추격조의 후보들이다. [사진=한화 이글스]
젊은 투수들인 박한길(1994년생), 김범수(1995년생), 최우석(1993년생)도 향후 한화의 추격조로 키워볼 후보로 꼽힌다. 박한길은 최고 150km/h의 빠른 공을 던지며 김성근 감독에게 ‘재미있는 투수’라는 칭찬을 들었고, 김범수는 2015 신인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을 받은 유망주다.
올 시즌 1군에 오르지 못했지만, 최우석 역시 스프링캠프에서 ‘스위치 투수’로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투수. 퓨처스리그에서 박한길은 6점대, 김범수는 7점대, 최우석은 8점대 ERA에 그치고 있기에 올시즌 1군의 추격조 역할을 맡기엔 무리가 있지만, 이들의 잠재력을 감안하면 로스터가 확장되는 9월 이후 혹은 내년에 추격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투수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들 외에도 이동걸, 박성호 등이 존재한다. 이들은 올 시즌 1군 무대에서 어느 정도의 기회를 얻은 선수들이며, 기복을 줄일 수만 있다면 1군 무대에서 나름의 몫을 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과연, 기사를 통해 언급한 선수들 중에서 필승조의 짐을 덜어줄 투수가 나올 수 있을까? 나온다면, 어떤 선수가 추격조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까? 또, 추격조가 등장할 경우 ‘야신’의 필승조 운용법은 어떻게 변화할까?
시즌 막바지로 치달아가는 현시점에서 다시 5연패를 당하면 위기에 처한 한화가 앞으로 어떤 형태로 필승조를 운용하며 위기에 대처할지 유심히 지켜보도록 하자.
계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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