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위 등극의 나비인가? 하위권 추락의 나방인가?
프로 선수와 대중 연예인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흡사하다. 불특정 다수에게 영상을 통해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거기서 비롯되는 피드백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게 된다. 미세한 차이로 희비가 엇갈리는 야구라는 종목은 더욱 그렇다.
플레이 하나에 영웅과 역적이 갈리고, 1구 1타에 따라 선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플레이 만이 아니라 대중에 노출되는 언행에 있어 통상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할 경우 다소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비판과 비난이 쏟아지곤 한다. 이런 생리를 잘 파악하고 있는 다수의 선수들은 SNS 사용도 지양하는 등 매사 조심스런 태도를 견지한다.
2010년 광저우 AG 엔트리 탈락 후, 염원이던 2014 AG 대표팀에 합류한 나지완 (사진: KIA 타이거즈)
지난 시즌 야구팬들에게 가장 많은 비난을 들었던 선수 중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이가 바로 KIA 나지완이다.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님에도 아시안게임 엔트리에 들었다는 사실이 금메달 획득 이후 본인의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이후 대다수 야구팬들, 심지어는 소속팀인 KIA 팬들에게마저 비판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거기에 공수에서 상대적으로 더 뛰어난 성적을 남긴 팀동료이자 2루수인 안치홍(2014 WAR 4.17 )의 대표팀 엔트리 탈락, 경찰청 입대가 이어지며 본인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한 이기적인 선수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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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모습과는 사뭇 비교되는 루키 나지완의 날렵한 모습 (사진: KIA 타이거즈)
2008년 KIA 유니폼을 입은 나지완은 데뷔시즌 0.295의 타율과 6홈런이라는 신인치곤 준수한 기록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2009년 4월 잠깐의 부진을 딛고 이후 해결사로 거듭하며 최희섭-김상현과 함께 KIA의 상승세에 기여했다. 또한 그 해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끝내기 포함 결정적인 홈런 두 방을 쳐내며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되었다. (2009년 23홈런 73타점 OPS 0.842)
2012년에는 아쉬움 투성이었던 팀 타선에서 유일하게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타자였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그야말로 ‘팀을 먹여살리는 타자’가 되어 고군분투했다. 435타수 125안타 21홈런으로 0.287의 타율을 기록한 나지완은 출루율 0.394, 장타율 0.474로 OPS 8할대의 준수한 성적을 찍었다. WAR 3.57(리그 전체 타자9위/ 팀내 1위)로 KIA를 대표하는 타자임을 증명했다.
2014년은 대망의 아시안게임이 있던 해였다. ‘군대로이드’라는 말까지 들으며 5~6월 맹타를 휘두른 그는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선정되며 금메달과 함께 병역면제의 혜택을 받았다. (대타로만 기용되며 3타수 무안타에 그친 점, 결승전에는 출장조차 하지 못한 점, 부상으로 정상적인 몸상태가 아니라는 점이 세간에 알려지며 거센 비판을 받게 됐다.)
2014시즌 398타수 124안타 19홈런 79타점으로 0.312의 타율을 기록한 나지완은 4할의 출루율과 5할의 장타율을 넘어서며 OPS 0.914를 기록했다. WAR 역시 2.55로 2013시즌보단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팀 타선에선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고 돌아온 나지완의 2015 시즌은 그래서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새롭게 출범한 김기태호에서도 나지완은 4번타자로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6월말 까지 그의 타율은 0.196, 채 2할에도 도달하지 못했고 OPS는 0.559로 10개구단 4번 타자 중 최악임은 물론 주전급 야수 중에서도 최악인 끔찍함 그 자체였다. 6월까지 2군행만 3번이었고, 4번으로 시작했던 타순은 승강기처럼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다. 결국 전반기 55경기에서 타율 0.204 3홈런 14타점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수술 후 재도약을 꿈꿨던 그는 점점 조급해졌고, 자신의 페이스를 잃어갔다.
2015년 6월 10일 광주 넥센전에서 나지완은 데뷔 첫 1번타자로 출장한다. (사진: KIA 타이거즈)
기대치에 걸맞지 않는 부진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타격 뿐 아니라 강점이던 출루율도 하락세였고 그리고 원래 약점이던 외야 수비에서는 프로선수라고 보기 힘든 실책성 수비가 반복되며 팀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 해에는 병역혜택 자격논란에 따른 구설수에 올랐다면, 2015시즌에는 야수 중 리그 최악의 성적으로 비난을 넘어 조롱받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 날씨가 더워진 7월에는 반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기태 감독을 비롯한 벤치 역시 나지완의 페이스를 끌어올리기 위해 여러 대책을 강구했다. 타순을 바꾸기도 하고 포지션을 바꾸기도 했다. 그 결과 7월 14경기에서 0.326의 고타율과 0.991의 OPS를 기록하며 예년의 모습을 되찾는 듯 했고 (3홈런 6타점)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가을 잔치와 리빌딩의 동시 달성을 위해 나지완의 부활은 필수 조건이다. (사진: KIA 타이거즈)
8월 이후 현재(9/10)까지는 굴곡이 있긴 하지만 올시즌 초 극심한 부진에서는 벗어난 모습이다. 8~9월 33경기 99타석에서 타율 0.276, OPS 0.819를 기록한 나지완은 본래 자신의 장점이었던 컨택과 출루에서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부자연스러웠던 스윙 역시 간결해지며, 전반기에 비한다면 한결 질 좋은 타구를 만들어내고 있다.
올 시즌 현재 나지완의 WAR은 -0.16이다.(300타석 이상 타자 중 하위 6위, 하위 1-2위는 롯데 박종윤과 한화 권용관) 그러나 아직 시즌 종료까지는 19경기가 남았고, 와일드 카드 쟁탈전에 참전 중인 팀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따금 필요 이상의 언행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지만, 리그 내 최약체인 팀 타선을 감안할 때 나지완의 부활은 팀의 5위 등극과 더 나아가 KIA 타이거즈가 강팀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남은 기간 나지완의 환호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사진: KIA 타이거즈)
구설수에 오르고 비판을 받더라도 결국 부동의 실력을 보여주는 선수에게 팬들은 박수를 보낸다. (물론 금지 약물 복용이나 경기 조작을 한 선수는 예외다.)
수년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선수의 부진을 다그치고 조롱하기 보다는, 제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차분히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 어찌됐든 그는 타이거즈 팬들에게 'V10'이라는 환상적인 기쁨을 선사한 선수 아닌가?
채정연 객원기자/ 편집팀 감수 (kbr@kb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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