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T 리포트
두려움에 당당히 맞선 타자, 최정
2015-01-29 목,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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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Report
거침없는 스윙을 보여주는 최정 (사진: SK 와이번스)
야구계의 고전 ‘야구란 무엇인가’의 저자 레너드 코페트가 그의 책에서 가장 먼저 제시한 화두는 [두려움]이었다.
당신이 좌타자라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지금 배터박스(batter box) 안에 들어섰다. 그리고 마운드에는 2m 8cm의 한 거인이 서있다. 바로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좌타자에게 단 한 개의 홈런도 허용하지 않았던 '빅유닛' 랜디 존슨(Randy Johnson)이다. 당신은 랜디 존슨이 슬라이더를 던질 거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랜디 존슨도 그 점을 알고 있지만 그는 자신있게 슬라이더를 던진다. 그리고 그의 슬라이더는 당신의 몸을 향해 파고들 듯이 날아온다. 당신이라면 이 공을 피하지 않고 스윙할 수 있을까? 당연히 날아오는 위험을 감지하고 당신의 몸은 본능적으로 피하려 할 것 이다. 하지만 공을 타격하려면 다가오는 공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 코페트는 바로 이런 원초적인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야구에 대한 이해의 처음이라고 말했다.
투수라면 타자를 상대하는데 있어서 몸 쪽 공에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바로 타자에게 공포감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몸 쪽 공을 던지다 나올 수 있는 빈볼은 그 위험성을 고려했을 때 고의적으로 맞추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실 바짝 붙인 몸 쪽 공이나 타자의 머리를 직접 겨냥하는 듯한 빈볼은 타자를 맞추겠다는 의도보다는 타자들에게 무의식적인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던져진다.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을 더 쉽게 공략하기 위해 배터박스에 딱 달라붙어있는 타자들을 공략하는 경우에도 몸 쪽 공은 효과적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타자들은 이런 공에 두려움을 느낀다.
물론 프로 선수들은 당연히 몸 쪽 공에 대한 대비를 하고,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각기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중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라 할 수 있는 방법은 공이 몸을 향해도 피하지 않고 맞서는 것이다.(물론 머리를 향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런 두려움과 정면승부를 선택한 타자들을 종종 봐왔다. 그들 중에서도 몸에 맞는 공에 관한한 꽤나 독보적인 선수가 한국프로야구에 한 명 존재한다. 바로 SK 와이번스의 3루수 ‘마그넷정’ 최정이다.
최정은 두려움에 당당히 맞선 용기있는 타자다. (사진: SK 와이번스)
최정의 사구에 관한 기록들은 현재진행형이며 독보적인 질주가 유력하다. KBO 최다 사구기록은 박경완이 기록한 166개. 2위는 박종호가 기록한 161개이다. (박종호는 1999년 28볼넷, 31사구라는 충격적인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두 선수는 모두 은퇴했다. 박경완은 166개의 몸에 맞는 공을 얻었지만 23시즌 동안 2043경기에 나섰다. 박종호는 18시즌 동안 1539경기에 나서서야 161개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최정은 어떨까? 최정은 2014시즌이 끝난 지금 10시즌 1040경기만에 156개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했다. 당장 2015시즌에 박경완의 기록을 뛰어넘고 11시즌 만에 KBO 몸에 맞는 공 1위에 올라설 가능성이 크다.
최정은 데뷔 2005년부터 연평균 15.6개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했다. 본격적으로 주전 선수로 기용된 2007년부터 계산한다면 연평균 약 18.38개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한 셈이 된다. 특히 최정이 최고 전성기를 달리던 2008년부터 몸에 맞는 공이 크게 늘었다. 2007년에는 11개에 불과했던 사구가 2008년에는 17개로 크게 늘었고, 2009년에는 99경기 동안 무려 22개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했다. 2009년 22개를 기록하며 시작된 사구 행진은 2013년까지 무려 5년간 단일 시즌 20개 이상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하고 나서야 2014시즌에 끝이 났다.(2007년부터 이어온 단일 시즌 2자릿수 이상의 사구기록은 8년째 이어오고 있다.)
최정은 2014시즌 부상으로 82경기에 나서는데 그쳤지만 결코 적지않은12개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했다. 2014시즌 최정은 82경기 동안 361타석에 들어서서 12개의 사구를 기록했는데, 이는 30타석당 한번 꼴로 공에 맞았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40경기를 더 출전했다고 가정해보자.그러면 최정은 대략 160번 정도 타석에 더 들어섰을 것이고 5번 이상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하며 KBO 역대 3번째로 160번째 몸에 맞는 공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컸다.
최정은 3년 연속 3루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던 2011년부터 2013년 까지는 20개 이상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했다. 그의 전성기는 과연 사구와 함께 해야 하는 것일까? 왜 유난히 최정이 많이 공에 맞을까? 배터박스 안쪽까지 타이트하게 붙어서 타격을 하는 그의 특성상 몸에 맞는 공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공을 피할 수 있지만 출루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방식이라면 생각을 바꾸는 게 좋다. 들어오는 몸 쪽 공에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그의 투지는 반갑지만 사구를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그의 잔류를 위해 86억을 투자한 SK의 솔직한 심정일테니까.
정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