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T 리포트
정우람은 좋은 불펜? 나쁜 불펜?
2016-11-20 일,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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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준영
A : ERA(평균자책점) 3.33 FIP(수비무관 평균자책점) 3.71 81이닝
B : 8승 5패 1홀드 16세이브 7블론세이브 세이브성공율 69.6%
A는 좋은 불펜투수, B는 불안한 마무리투수로 평가받을 만한 성적을 기록했다. 놀랍게도 A와 B는 같은 투수다. 바로 한화 이글스의 마무리 투수 정우람이다.
정우람은 이번 시즌 61경기 ERA 3.33(80이닝 이상 투수 중 3위) FIP 3.74(2위), K/9 9.44(3위), BB/9 2.89(16위), 81이닝(선발등판 없는 투수 중 4위) 등 각종 지표에서 상위권에 올랐다. 이러한 성적만 본다면 정우람의 16시즌은 대단히 좋은 시즌으로 보인다. 하지만 16세이브를 거두면서 7블론세이브를 범했다. 세이브 성공률은 69.6%로 10개 구단 마무리 투수 중 최하위였다.
KBO가 블론세이브를 집계하기 시작한 06시즌 이후 10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90명의 투수 중 세이브성공률이 70%를 넘지 못한 투수는 5명뿐이다. 07시즌 우규민, 08시즌 정재복, 13시즌 이민호, 15시즌 권혁, 16시즌 정우람이 그 주인공이다.
06시즌 이후 세이브성공률 70% 미만 투수 리스트.
ERA를 살펴보면 모두 생각보다 괜찮은 ERA를 기록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심지어 07시즌 우규민은 2점대 ERA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 팀의 마무리 투수는 보통 팀에서 가장 뛰어난 불펜투수가 맡기 때문이다.
16시즌 정우람은 5명 중 두번째로 좋은 ERA를 기록했다. 다만 리그 득점 환경이 다른 것을 감안하여 ERA+(100이 리그 평균이다.)를 계산해보면 16시즌 정우람이 가장 좋은 활약을 했다. 정우람이 ERA+ 156으로 가장 높았고, 07시즌 우규민은 148로 두 번째로 높았다. 15시즌 권혁을 제외하고는 모두 리그 평균 이상의 ERA+를 기록했다.
FIP를 살펴보면 조금 다른 양상을 볼 수 있다. 위 5명의 투수 중 3점대 FIP를 기록한 투수는 16시즌 정우람과 08시즌 정재복뿐이다. FIP+를 봐도 리그 평균 이상을 기록한 투수 역시 16시즌 정우람과 08시즌 정재복뿐이다.
정재복이 ERA+ 106, FIP+ 119로 리그 평균은 조금 넘는 수준이었고, 10홀드를 기록했기에 세이브성공률이 저평가된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정우람은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고 가장 낮은 세이브성공률을 기록한 투수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우람은 왜 좋은 성적을 거두고도 낮은 세이브성공률을 기록한 것일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우람의 투구 강도다.
일반적으로 마무리 투수는 1이닝만 책임지는 경우가 많으며, 블론세이브를 범해도 1이닝을 소화하고 내려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정우람은 7번의 블론세이브 상황에서 2이닝 이상 던진 경기가 4경기, 1이닝 이상 던진 경기가 6경기였다.
정우람의 블론세이브 경기 등판 일지.
사실 정우람은 전반적으로 평범한 마무리 투수보다 투구 강도가 강했다. 61경기에서 1이닝 이상 던진 경기가 32경기, 2이닝 이상 경기가 19경기, 3이닝 경기도 2경기가 있었다. 박희수(2경기), 이현승(3경기), 임정우(3경기), 임창용(2경기), 김재윤(6경기), 김세현(1경기)이 2이닝 이상 소화한 경기를 다 더해도 17경기라는 것을 보면 정우람의 투구 강도가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
체력적인 문제가 정우람의 투구 성적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월별 성적을 봐도 알 수 있다. 4월부터 7월까지는 점점 ERA가 높아지다가 7월 10일부터 7월 19일까지 10일간 휴식을 가진 이후 8월부터 다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정우람의 월별 성적.
정우람이 세이브 성공률이 낮은 이유는 한화의 세이브 기회 자체가 적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화는 24세이브, 14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며 세이브기회가 총 38회로 KBO리그에서 가장 적은 세이브 기회를 얻은 팀이었다.
사실 블론세이브는 한 시즌 동안 선수별로 10개가 넘는 경우가 거의 없는 표본이 적은 기록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두개의 블론세이브만 평소 시즌보다 많게 나와도 비율로 보면 급등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특히 세이브 기회가 적어지면 그만큼 블론세이브의 변동이 더 크게 느껴지게 된다.
정우람은 15시즌에도 5개의 블론세이브를 범했고, 30세이브를 거둔 12시즌에도 5개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15시즌에는 11홀드를 기록했기 때문에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시즌과 똑같은 16세이브를 거뒀는데 세이브성공률은 76.2%였다. 블론세이브 단 2개 차이가 세이브성공률에서 10%에 가까운 차이를 가져온 것이다.
정우람이 16시즌 좋은 성적을 거뒀고, 세이브성공률이 낮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어쨌든 세이브성공률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우람은 정말 팀 승리에 많은 기여를 하지 못한 것일까?
어떤 선수가 팀 승리 확률을 얼마나 높였는지를 보여주는 WPA(추가한 승리 확률)를 보면 그렇지 않다. 정우람은 16시즌 WPA 1.95를 기록했는데 이는 선발투수 니퍼트에 이은 투수 2위 기록이었다. 16시즌 최다 세이브를 기록한 김세현(36세이브 / 0.84)은 물론 가장 높은 세이브 성공률을 기록한 임창민(89.7% / 1.69)보다도 높은 WPA를 기록한 것이다.
WPA로 보면 정우람은 리그에서 가장 팀 승리에 기여를 많이 한 불펜투수였다. 정우람이 블론세이브가 많음에도 WPA가 높은 이유는 블론세이브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정우람은 블론세이브 상황에서 평균 WPA -0.217을 기록했는데 이는 KBO리그 10개 구단 마무리 투수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블론세이브 경기 WPA 분석.
그 이유는 정우람이 많은 이닝을 소화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정우람은 블론세이브 상황에서도 많은 이닝을 던지며 팀 승리 확률을 최대한 많이 높였다. 정우람은 마무리투수 중 블론세이브를 범하고도 WPA가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를 기록한 경기가 있는 유일한 마무리 투수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정우람은 16시즌 아주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대단히 낮은 세이브성공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세이브성공률이 낮은 이유는 정우람이 좋지 않은 피칭을 해서가 아니었다.
정우람의 세이브성공률이 낮은 이유는 첫 번째로 투구 강도나 너무나 강했기 때문이었다. 두번째로 한화의 세이브 기회 자체가 적어 많은 세이브 기회를 얻지 못해 표본 크기 자체가 적어지며 지표의 변동률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WPA로 보면 정우람은 16시즌 팀 승리에 가장 많이 기여한 구원투수였다. 단순히 블론세이브가 많다는 이유로 정우람의 이번 시즌이 실망스럽다고 하는 것은 과한 평가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는 17시즌에도 팀 환경이 변할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정우람의 17시즌도 16시즌과 비슷한 독특한 시즌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