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과거 김재환 ‘속죄’로 포장 말아야
2016 KBO리그의 패권은 두산 베어스가 차지했다. 두산은 정규시즌 우승에 이어 한국시리즈에서도 NC 다이노스를 4전 전승으로 격파하고 통합 우승을 거머쥐었다.
두산의 통합 우승에 기여한 선수 중 한 명은 김재환이다. 그는 정규 시즌에서 0.325의 타율 37홈런 124타점으로 두산 타선을 이끌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붙박이 4번 타자로 나서 2차전과 3차전 2경기 연속 결정적인 홈런을 터뜨렸다.
"(정규 시즌)MVP는 김재환이다."
두산이 정규시즌 우승의 매직넘버 1을 남겨둔 지난 9월 22일 kt 위즈전을 앞두고 김태형 감독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두산의 정규시즌 우승에 김재환이 가장 많은 기여를 했다는 감독으로서의 만족감의 표현이다.
두산 김재환 ⓒ 두산 베어스
37홈런(리그 3위), 124타점(3위), 0.628의 장타율(3위),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 5.92(리그 타자 중 5위)로 타선을 이끈 타자를 우승팀 감독이 MVP로 꼽는 것은 기록만 놓고 보면 전혀 어색하지 않다. 2008년 프로 데뷔 후 한 시즌에 60경기 이상 출전한 적이 없을 정도로 팀 내 비중이 미미했던 김재환의 기량 급성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김재환은 2011년 10월 야구월드컵 국가대표 선발 후 사전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인 S1 동화작용 남성호르몬 스테로이드가 검출되어 국가대표 자격 박탈과 함께 1군 1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바 있다. 그의 기량 급성장에는 금지 약물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김재환은 인터뷰에서 "약물 꼬리표, 가족의 힘으로 극복했다"고 밝혔다. 선수 본인이 금지 약물 사용을 마치 자신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돌아온 불운이나 고난처럼 간주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가족의 힘으로 극복했다'는 표현에 어울리는 것은 불의의 부상이나 재활이다. 선수 본인의 잘못된 선택에서 온전히 비롯된 금지 약물 사용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일부 언론은 김재환이 고난을 극복한 영웅인 것처럼 포장하는 이른바 '감성 팔이'에 앞장서고 있다.
금지 약물 사용에 대한 경각심은 선수 본인뿐만 아니라 그를 MVP로 꼽은 감독, 그리고 감성적으로 포장한 언론까지 모두가 결여되어 있다. 결과만 좋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잘못된 인식에 기초한다. 정정당당히 승부를 겨뤄야 하는 스포츠의 페어플레이 정신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김재환을 영웅으로 만든 상황은 두 가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압도적인 전력을 앞세워 통합 우승을 차지한 두산의 동료 선수들의 위업이 퇴색될 수 있다. 20승의 에이스 니퍼트를 비롯해 보우덴, 장원준, 유희관까지 모두 15승 이상을 찍은 선발 투수 4인방 '판타스틱 4'는 물론 올 시즌 기량이 급성장한 오재일, 박건우 등의 맹활약이 김재환을 부각시킬수록 퇴색될 수 밖에 없다. 두산의 이룬 가치를 스스로 낮추는 행위다.
두산 김태형 감독 ⓒ 두산 베어스
둘째, KBO리그에 부정적 선례를 남겼다. 김재환 개인에게는 가혹할 수 있지만 약물 전력 꼬리표는 영원히 그의 뒤를 따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또 다른 김재환이 나와서도 안 된다. 감독과 언론까지 나서 그를 추켜세운다면 제2, 제3의 김재환이 나올 수 있다. 오히려 현장의 지도자와 냉정해야 할 언론이 나서서 선수의 약물 사용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선수가 금지 약물을 사용해 팀 성적 및 개인 성적을 이끌어내도 비판할 수 없게 된다. KBO리그는 금지 약물 사용 선수가 판을 치는 '약물 리그'가 될 것이다.
당장 내년 시즌 초반에 금지 약물 사용 선수가 나타나 징계를 모두 받은 뒤에 복귀해 맹활약을 이어나가 팀 통합 우승의 주역이 된다면 해당 팀과 선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 선수를 '고난을 극복한 영웅'으로 평가해야 할까?
금지 약물 전력 선수 1인으로 인해 팀이 거둔 업적까지 폄하할 필요는 없다고 안된다. 하지만 김재환이라는 선수로 인해 우승에도 불구하고 찜찜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두산 팬들의 불편함은 누가 해소할지 의문이다. (관련 기사 : 김재환과 헥터, 그들에게 박수를 보낼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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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출처: 프로야구 통계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KBO기록실, 스탯티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