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 4. KIA 타이거즈 : 서동욱, 이범호, 최영필
‘전력 강화’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내부 자원에게 투자하여 능력을 향상시키는 ‘육성’이 첫 번째다. 그러나 선수 한 명을 키우는데 드는 시간과 자금, 추가로 필요한 인내심의 양은 만만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일정 이상의 성적을 내야 하는 경우 타 팀에서 이미 검증된 선수를 영입해 단숨에 전력 상승을 이루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최근 몇 년 간 FA시장의 승자와 패자가 누구였는지를 상기해 보자.) 이러한 ‘교환’과 '선택'의 결과가 어느 쪽의 승리인지는 결국 시간이 말해준다.
성적 향상을 위한 마지막 퍼즐, 상대와 바꿔들었던 하나의 패가 승부를 좌우한다! <신의 한 수> 시리즈에서는 FA 이적, 트레이드, 2차 드래프트 등을 통해 영입한 선수들 중 소기의 목적대로 빛을 발하고 있는 선수들을 팀 별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전 편 보기: 넥벤져스를 더 강하게 한 '머니볼' 넥센의 3가지 선택)
#1. 서동욱의 인생 2막: 11년 만에 돌아온 호랑이
2003년 프로 데뷔 이후 서동욱의 이름 앞에 늘상 함께 했던 수식어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투수를 제외하고 전 포지션을 섭렵한 그가 오랜 시간 프로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하지만 그 비결의 이면에는 어떤 포지션에서도 주전급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진한 아쉬움이 담겨 있다. 확고한 주전이 되기엔 2% 부족한 멀티 플레이어의 숙명일까? 한 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그는 서서히 저니맨의 행보를 걸었다.
경기고 재학 시절 서동욱은 박경수(kt)-지석훈(NC)-나주환(SK)과 더불어 초고교급 유격수 4인방으로 꼽혔을 만큼 대형 유망주였다. 200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무려 2차 1라운드(4순위)로 KIA 타이거즈에 지명될 만큼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고교 시절 재능을 좀체 발현하지 못한 그는 2005년 11월 LG 트윈스로 트레이드 되고 만다. (KIA: 마해영-최상덕-서동욱<-> LG: 장문석, 한규식, 손상정 3:3 트레이드)
상무 제대 후 첫 시즌인 2008년 9월 25일, KBO리그 사상 최초로 좌·우 연타석 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인상적인 장타력을 과시하기도 했지만 수비에서 약점을 노출하며 1군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2008시즌 27경기 82타석 타율 0.243 OPS 0.768)
2011년은 서동욱이 프로 데뷔 후 가장 빛났던 한 해였다. 112경기에 출장해 0.267의 타율과 7홈런 37타점 OPS 0.732를 기록했다. 2군을 폭격했던 타격을 감안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이었지만 데뷔 후 약점이던 수비에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야수들의 부상이 잦았던 2011시즌 LG에서 내-외야 포지션을 가리지 않는 서동욱은 기록 이상의 가치를 가진 존재였다. 하지만 서동욱의 활약은 안타깝게도 2012년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2012년 103경기 324타석 0홈런 타율 0.216 OPS 0.583)
2012년의 부진 탓일까? 이듬해인 2013년 4월 서동욱은 최경철과 트레이드 되어 그의 세번째 팀인 넥센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게 된다. LG 시절 ‘만년 유망주’에 머물렀던 박병호가 넥센 이적 후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리그 MVP로 성장했기에 '넥센' 서동욱에 대한 기대도 적지 않았다.
트레이드 효과 덕분인지 후반기 이후부터는 수비 뿐 아니라 타격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넥센의 상승세를 유지하는데 보탬이 되었다. 트레이드 이후 타율은 0.271, 볼넷/삼진 비율은 0.58, 6홈런 21타점 OPS 0.786으로 2011시즌 이상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리그 최고의 강타선으로 변모하고 있던 넥센 타선이 서동욱에게 허락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후 팀에 부족한 포지션을 메꾸기 위해 2014시즌 포수 훈련까지 받았음에도 1군에서 머문 시간은 극히 짧았다. (39경기 41타석 타율 0.147 OPS 0.413)
이후 대타 등으로 주로 나서며 이따금 반짝 활약을 보이기도 했지만 주전의 벽은 높았다. 그리고 2016년 4월 6일, 더 이상 젊지도 유망하지도 않은 그에게 운명과도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젊은 자원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넥센이, 서동욱에게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그를 KIA로 무상 트레이드한 것이다. 무려 11년 만의 친정팀 복귀였다. 그리고 한 편의 인간 드라마가 시작됐다.
4월 19일 삼성 전, KIA가 5-1로 앞선 8회말 2사 2루에서 포수 이성우를 대신해 타석에 들어선 서동욱은 시즌 첫 타석에서 벼락같은 홈런포를 쏘아올리며 그의 복귀를 알렸다. 이후 무주공산이던 KIA의 2루는 그의 차지가 되었다.
그리고 5월엔 타율 0.358, OPS 1.035 3홈런 15타점으로 리그 2루수 중 최고라 해도 손색이 없는 성적을 남겼다. 반짝 활약이 아니었다. 기복은 있었지만 전반기 타율 0.314, 10홈런 40타점 OPS 0.934로 2루수 골든글러브의 유력한 후보로 점쳐질 정도로 괄목할 성적을 거두며 팀 타선을 이끌었다.
후반기 들어서는 체력 저하 탓인지 전반기만큼의 임팩트는 없었지만 꾸준한 활약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는 팀에 힘을 보탰다. (후반기 타율 0.267 6홈런 27타점 OPS 0.821)
하지만 시즌 막판 돌발 상황이 발생하고 만다. 9월 25일 kt전 이후 밤새 복통에 시달리던 서동욱은 급성충수염으로 수술을 받게 된다. 소속팀 KIA가 LG와 치열한 4위 싸움을 하던 시점이었기에 타격감이 살아나고 있던 그의 공백은 예상보다 컸다.
결국 2016시즌 성적은 3할에 약간 못 미친 타율과 OPS 0.882으로 마감되었고 팀은 5위에 머물고 말았다. 시즌 최종전인 한화전에 복귀하며 포스트시즌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지만 10월 11일 와일드카드 최종전에서 2타수 무안타 1볼넷으로 팀의 탈락을 막진 못했다.
시즌 막판 아쉬움을 남기긴 했지만 굴러온 복덩이와도 같은 서동욱의 활약이 없었다면 KIA의 가을도 없었다. 무엇보다 9할에 가까운 OPS(0.883)와 커리어하이를 훌쩍 뛰어넘은 16개의 홈런이 눈에 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포스트시즌 진출은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KIA가 5위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11년 만에 친정팀으로 복귀한 '굴러온 복덩이' 서동욱의 절치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 캡틴 이범호: 마침내 핀 30홈런-100타점 꽃
야구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을 꼽으라면 그 중 하나는 만루홈런이 터지는 장면일 것이다. 그렇다면 KBO리그 통산 최다 만루홈런 기록을 가진 선수는 누구일까? 역대 3루수 통산 최다 홈런 기록 보유자이기도 한 KIA 타이거즈의 이범호다. (통산 283홈런)
지금에야 KIA 타이거즈 유니폼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이자 팀 컬러를 상징하는 이범호지만 7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한화 이글스를 대표하는 타자였다.
2000년 2차 1라운드 8순위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이범호는 2004년 당시 유승안 감독 휘하에서 유격수로도 자주 출장(80경기 611.1이닝)하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전경기인 133경기에 출장하며 타율 0.308 23홈런 74타점 OPS 0.907로 리그 정상급 공격형 내야수로 성장했다.
그의 2004시즌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는 5.6으로 리그 전체 야수 중 6위를 기록했다. 아쉬운 점은 유격수와 3루수를 오가며 저지른 무려 30개에 달하는 실책이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5시즌부터는 3루수로 정착했고 해를 거듭할 수록 그의 수비는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이후 2009년 WBC에서 맹활약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 이범호는 시즌 종료 후 FA 자격으로 일본 소프트뱅크와 계약했다. (3년 총액 3억 5천만엔) 그러나 정교함과 선구안에 약점이 있는 그에게 일본 프로야구는 상성이 맞지 않는 리그였다.
시범 경기 부터의 부진과 시즌 초반 주전 경쟁 탈락으로 변변한 기회조차 잡지 못한 이범호는 2010년 48경기 124타수 28안타 타율 0.226 4홈런 8타점이라는 참담한 성적에 그치고 만다. 심지어 국내에서좋은 평가를 듣던 수비에서도 소속팀 감독에게 혹평을 받기도 했다.
악몽의 1년을 보낸 이범호는 결국 일본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복귀하게 된다. 이후 원 소속구단인 한화 이글스와의 협상에서 차질을 빚을 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던 KIA 타이거즈 행을 전격적으로 결정하며 당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2011시즌을 앞둔 당시 KIA에는 2009시즌 MVP이자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인 김상현이 버티고 있었다. 타격에 기복이 있고 수비가 썩 좋은 편은 아니라곤 해도 MVP 출신 3루수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이범호를 추가 영입하는 것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수비에서 강점을 가진 이범호가 주전 3루수로 낙점되었고 이후 김상현은 외야수로 전향하게 된다.
당시 KIA는 이범호-최희섭-김상현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L-C-K 포를 구축하며 2009년 우승에 이어 2년 만의 대권 도전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4위로 썩 만족스럽진 못했다. L-C-K포 모두 부상 엇박자로 동시에 출장하는 경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신입 호랑이인 이범호 만이 중심 타자다운 활약을 보였다. 총 101경기에 나서 0.302의 타율과 77타점, OPS 0.968을 기록하며 공격형 3루수로서의 강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볼넷도 75개를 골라내며 그간 약점이던 선구안에서도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WAR은 팀 내 타자들 중 1위를 기록했고 리그 야수 전체로 따져도 5위였다. (2011시즌 WAR 1위 최형우)
2014 시즌 주장으로 선출된 이범호는 주장 2년차였던 2015 시즌에는 전반기 최악의 부진에 시달리다가 시즌 중반 이후 각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7월 이후 시즌 종료 시점까지 0.312의 타율과 1.037의 OPS를 기록한 이범호는 이 기간 동안 무려 18개의 홈런을 몰아치는 매서운 타격으로 팀의 5위 도전을 이끌기도 했다. 시즌 79타점으로 브렛 필에 이어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타점을 기록했다.
프로 데뷔 17년차를 맞은 올시즌 이범호는 36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커리어하이를 새로 썼다. 리빌딩 중인 KIA 타선에서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며 공수에서 대체 불가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올 시즌 33개의 홈런과 108타점을 기록하며 프로 데뷔 후 최초로 30홈런-100타점 고지를 훌쩍 뛰어넘었다. 장타율 역시 0.562로 데뷔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9월 23일 NC전에서는 통산 15번째 만루홈런을 쳐내며 자신이 보유한 통산 만루 홈런 기록을 다시 한번 경신했다. (2위 심정수 12개)
2015시즌 이후 4년 총액 36억원이라는 합리적 수준의 FA 계약 이후 두번째 전성기를 맞으며 공수에서 팀을 이끈 이범호의 활약이 없었다면 5년 만에 찾아온 KIA의 가을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3. 43세 최영필 : 최고령 '믿을맨'의 힘
관록 있는 베테랑의 존재는 후배들과 팀에게 큰 힘이 된다. 2014시즌 이후 3년 동안 KIA 불펜의 무게중심을 잡아준 존재는 단연 최영필이다. 불혹을 훌쩍 넘긴 43세의 노장 최영필은 2016시즌에도 노련한 피칭으로 팀 마운드의 허리를 지켰다.
97년 현대 유니콘스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최영필은 데뷔 이후 4년간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2001년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된다. 이후에도 평범한 활약에 그쳤던 그는 프로 데뷔 9년차인 2005시즌 드디어 빛을 발하는 데, 총 40경기(13선발)에 등판해 112이닝 8승 8패 5세이브 ERA 2.89로 한화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이후 준플레이오프에선 구원 투수로 활약하며 MVP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한화 유니폼을 입은 10년동 안 보직을 가리지 않고 등판하며 팀에 헌신했지만 2010시즌 이후 선수 생명의 위기를 맞게 된다. 보상 규정에 발목을 잡힌 최영필은 FA 계약에 실패하며 팀 동료였던 이도형과 함께 'FA 미아'가 되고 말았다. 이후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일본 독립리그 등에서 뛰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다행히 FA 보상 권리를 포기한 한화의 배려로 2012년 KBO리그로 돌아온 최영필은 SK 와이번스에서 2년간 활약하지만 2013년 부진으로 인해 다시 은퇴 위기에 몰렸다. 13시즌 이후 팀을 찾지 못했던 그는 2014년 2월, 불펜 보강이 시급했던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게 된다. 6월 1일 1군 무대에 등판하여 홀드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팀의 필승조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2015시즌에는 KBO리그 최고령 선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활약했다. 총 59경기에 나서 볼넷 8개만을 내주는 안정적인 피칭을 선보였다. 평균자책점 2.86 FIP 4.09로 KIA 불펜에서 가장 좋은 세부스탯을 기록했다.
2015년 KIA 타이거즈 구원진의 평균자책점은 4.73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최영필의 가치는 한층 더 빛난다. 게다가 9이닝 당 볼넷 허용률이 1.14로 해가 지날수록 줄었다. 이닝 당 주자 허용률 WHIP도 1.03으로 리그 정상급이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올 시즌 불안함의 연속이던 KIA 불펜에서 그나마 안정감있는 ‘믿을맨’은 43세 최영필이었다. 최고령 투수 최영필은 54경기에 등판해 4승 3패 2세이브 10홀드 ERA 3.61 FIP(수비무관 자책점) 3.84를 기록했다. WHIP 역시 1.43으로 나쁘지 않았다.
내년이면 44세가 되는 최영필이 2017시즌에도 세월을 거스르는 피칭으로 KIA 불펜을 이끈다면, 중장년 야구팬들에겐 그의 활약이 야구 이상의 의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록출처: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 스탯티즈, KBO 기록실 ]
채정연 기자/ 정리 및 편집: 김정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