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T 리포트
필살기로 진화한 윤규진의 포크볼
2015-04-09 목,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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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Report
2014년 9월 7일 LG전, 9회 초 2사 1루의 상황에서 한화의 마무리 윤규진은 LG의 오지환과 마주했다. 3대 3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윤규진이 선택한 초구는 속구였다. 윤규진의 손에서 떠난 공은 낮게 제구 되며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을 받지 못했다. 1-0의 카운트. 또다시 윤규진은 속구를 던졌고 이번에는 공이 너무 높았다. 볼카운트 2-0.
배터리로서는 스트라이크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었고 윤규진은 다시 한 번 속구를 던졌지만 이번에는 타자의 몸 쪽을 너무 파고들고 말았다. 이제 볼카운트는 투수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3-0. 윤규진의 4구째 구종은 역시나 속구였고 오지환은 공 하나를 바라봤다. 볼카운트 3-1. 타자가 한번 노려볼 만한 타이밍. 하지만 윤규진의 5구는 앞선 구종과 마찬가지로 속구였고, 오지환은 이 속구를 받아 쳐서 결국 안타를 만들어냈다.
이 만남이 있고 정확히 7개월 후 윤규진과 오지환은 다시 마운드와 타석에 서있었다. 4월 7일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LG와의 1차전 윤규진은 2사 2루의 상황에서 오지환과 승부를 펼쳐야 했다. 경기 스코어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3대 3.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은 후 오지환을 상대로 윤규진이 던진 초구는 포수의 미트를 향했고 스트라이크 콜을 받았다. 윤규진이 던진 공은 포크볼이었다. 이후 윤규진은 높은 속구로 오지환의 시선을 흩트렸고, 3구째 다시 포크볼을 던져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불카운트 1-2. 볼카운트의 여유가 생긴 윤규진이 선택한 위닝샷은 역시 포크볼이었다. 바깥쪽 높게 제구된 포크볼에 오지환은 헛스윙을 했고 찬스를 살리지 못한 채 덕아웃으로 돌아가야 했다.
올 시즌 윤규진은 몇 년간 마무리 부재에 시달려야 했던 한화의 고민을 말끔하게 해결하는 중이다. 윤규진이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는 이유에는 역시 그가 던지고 있는 ‘포크볼’의 힘이 컸다. 특히 윤규진이 좌타자를 상대로 포크볼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타자들의 고민은 늘어만 가고 있다. 작년 윤규진의 레파토리는 조금 단순했다. 속구와 슬라이더 위주로 타자와 상대했고 특히 좌투수에게는 속구의 비율이 높았다.
작년 윤규진의 좌타자 피OPS는 0.698로 크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순간 좌타자에게 실점을 하며 팀의 위기를 지키지 못했던 순간이 많았다. 작년 윤규진은 198명의 우타자를 상대로 20실점을 했고, 114명의 좌타자를 만나 19점을 헌납했다. 이런 결과는 윤규진이 좌타자를 압도할 만한 구종이 부족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년 윤규진이 많이 투구한 슬라이더는 좌타자를 상대하기 적합하지 않다. 좌타자의 몸쪽으로 휘어들어가는 슬라이더는 좌타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다. 투수의 입장에서 타자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변화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괜히 있는 것은 아니다.
작년 10월 2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한 윤규진은 연속해서 세 명의 좌타자와 승부해야 했다. 1사 1,2루의 위기에서 윤규진은 손아섭을 상대로 몸 쪽으로 속구를 던졌고 이를 손아섭이 받아쳤지만 좌익수 뜬공으로 물러나게 된다. 이후 롯데 더그아웃은 좌타자 박준서를 대타로 내세웠고 박준서는 5구째 직구를 통타해 2타점 2루타를 기록한다. 박준서와 상대하면서 윤규진이 던진 구종은 속구 4구, 슬라이더 1구였다. 이어진 2사 2루에 상황에서 또 한 번 좌타자 박종윤이 타석에 들어왔고 윤규진이 던진 한가운데로 속구를 받아 쳐서 1타점 3루타를 만들어 낸다.
좌타자 세 명과 상대하면서 윤규진이 던진 구종은 속구 6구, 슬라이더 2구였다. 롯데의 좌타자들은 집요하게 윤규진의 속구만을 노렸고 변화구에는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작년 윤규진은 속구의 힘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차이가 상대적으로 컸던 투수였다.
하지만 올 시즌 윤규진은 포크볼을 주 무기로 활용하면서 좌타자를 상대로 하는 볼배합을 완전히 바꿨다. 3월 29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현역 최고의 교타자인 서건창을 상대로 윤규진은 속구와 포크볼을 절묘하게 컨트롤하며 그를 1루수 직선타로 잡아냈다.
윤규진이 서건창과의 승부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포크볼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볼카운트인 0-2에 쉽게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윤규진이 던지는 포크볼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카운트를 잡기 위해 던지는 스플리터에 가까운 볼이고 둘째는 상대방의 헛스윙을 유도하기 위해 던지는 낙차가 큰 포크볼이다. 좌타자의 승부에서 윤규진은 스플리터에 가까운 포크볼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편, 윤규진이 타자와의 승부에서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전개하다 보니 투구 수 또한 줄어들었다. 시즌 초반이지만 윤규진은 작년에 비해 이닝 당 투구 수를 2.7개(2014년 17.7개, 2005년 15개-4.8일 기준) 절약하고 있다. 포크볼을 활용하면서 윤규진은 올 시즌 최고의 마무리로 거듭나고 있다. 만약 올해 한화의 가을 야구 진출에 전제조건이 있다면 그 중 하나는 윤규진의 활약 여부일 것이다. 윤규진을 중심으로 계산이 가능한 불펜 운영이 이루어진다면 한화의 가을야구도 꿈은 아닐 것이다. 윤규진의 어깨에 많은 것이 올려진 2015시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