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 완료]한화, 과연 마운드만이 문제인가
한화 이글스는 지난 2년간 스토브리그 때마다 강력한 다크호스로 꼽혔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는 우승 후보로 꼽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한화는 더 이상 다크호스로 불리지 않는다. 지난 2년간 하위권에 머무른 한화는 올 시즌 별다른 기대를 받지 않고 있다.
그 판단의 가장 큰 원인은 선발 마운드다. 한화는 지난 시즌 선발진 ERA 6.38로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다. ‘판타스틱 4’를 앞세운 두산이 4.11의 선발진 ERA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한화는 선발진의 소화 이닝(587), 퀄리티 스타트(25) 역시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다. 엄청난 경력의 외인 투수 두 명이 합류했지만 이들의 활약 여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불펜진 역시 문제가 많다. 불펜의 핵심을 맡고 있던 권혁과 송창식이 수술을 받아 제 모습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미지수인 상태. 여기에 박정진(40), 심수창(36), 이재우(37), 송신영(40) 등은 노쇠화가 한창 진행될 나이다. 확실한 전력이 되어줄 선수는 정우람 정도뿐이다.
2016시즌 한화 야수진은 리그 득점 4위를 기록했다. ⓒ 한화 이글스
반면 한화의 타선에 대한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다. 역대 최초의 단일시즌 300출루를 해낸 김태균에 국가대표급 테이블세터 정근우, 이용규가 건재하며, 30홈런 타자인 로사리오와도 재계약에 성공했다. 지난 시즌 평균득점 4위(경기당 5.74득점)를 기록했던 타선이 고스란히 유지된 셈이다. 언뜻 보면 한화의 야수진에는 별 문제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속내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절대적 약점인 마운드에 가려 조명을 덜 받고 있을 뿐 한화는 야수진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한화의 문제점은 비단 마운드 뿐만이 아니다.
야수진의 극심한 주전 의존도
한화의 ‘주전 5인방’은 무려 22.09의 WAR을 합작했다. [기록=KBReport] ⓒ 한화 이글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제는 높은 주전 의존도다. 한화의 야수진에는 김태균, 정근우, 이용규 등 각 포지션에서 정점에 서 있는 이른바 ‘슈퍼 스타’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연봉으로나 실력으로나 명성으로나 리그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다. 팀이 수 년째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상황에서 한화 팬들의 몇 안되는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들이 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이들 삼인방을 제외한 한화는 실로 암담하기 짝이 없다. 지난 시즌 한화 타선은 총 16.80의 WAR을 기록했는데, 이 중 무려 94%에 달하는 15.80의 WAR을 김태균(7.87)-정근우(3.88)-이용규(4.35)가 합작했다. 사실상 타선 전력의 90% 이상을 이들 세 명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10개구단 WAR 상위 5명의 WAR 비중 ⓒ KBReport
팀의 WAR 상위 5명으로 폭을 넓혀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지난 시즌 한화의 타자들 중 WAR 상위 5명은 김태균-이용규-정근우-로사리오-송광민이다. 이들이 합작한 WAR은 무려 22.09로, 한화 타선 전체 WAR(16.80)의 131%가 넘는다. 두산의 WAR 상위 5명이 팀 WAR의 76.7%를 차지한 것과는 엄청난 차이다. 상위 5명에 대한 WAR 의존도가 한화보다 높았던팀은 kt뿐이다.
한화에서 위의 ‘5인방’ 외 30명의 타자 중 WAR 1.0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오히려 WAR이 마이너스 수치인 타자만 무려 22명이나 된다. 한화는 리그에서 가장 많은 마이너스 WAR 타자를 보유한 팀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들 5인방이 자리를 비울 경우에는 팀 전체가 휘청거리기 일쑤였다. 지난 시즌 한화가 3연패 이상을 당한 것은 총 9차례인데, 이 중 무려 6차례가 이들 5인방의 결장과 맞물려있었다.
개막 첫 달인 4월 이용규와 송광민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3연패, 7연패, 3연패가 이어졌고, 시즌 막판인 9월에는 로사리오와 이용규가 결장하며 3연패, 5연패를 당했다. 그나마 팀 내에서 가장 높은 WAR을 기록한 김태균이 시즌 내내 라인업을 지켜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김태균이 몇 경기라도 결장을 했다면, 한화의 순위는 순식간에 9위까지 추락했을지도 모른다.
노쇠화 앞둔 야수진
2016시즌 한화의 각 포지션별 최다 이닝 선수 [기록=KBO] ⓒ KBReport
더 큰 문제는, 한화가 굳게 의지하는 주요 타자들의 노쇠화 시기가 점차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김태균과 정근우는 1982년생으로 만 34세다. 두 선수는 지난 시즌까지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줬지만, 냉정히 말해 당장 다가오는 2017시즌부터 노쇠화가 시작된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나이다.
이외에도 송광민은 만 33세이며, 안방을 책임지는 조인성(41), 차일목(36), 허도환(32) 등 포수 3인방도 나이가 상당하다. 외야진의 김경언(34), 장민석(34), 이성열(32)도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 사실상 주전 야수들 태반이 30대 중반인 셈이다.
그렇다고 당장 2017시즌 주전으로 도약할만한 젊은 선수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현재 한화에서 주전급으로 성장이 기대되는 20대의 주전급 야수는 하주석, 신성현, 양성우 정도가 전부다.
한화는 최근 수 년간 드래프트 상위 순번을 독차지하면서도 이들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이들을 내쳤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한화는 지난 2년간 권용관, 오윤, 허도환 등 30대 선수들을 데려오면서 김민수, 노수광, 오준혁 등 20대 초중반의 젊은 타자들을 다른 팀에 내줬다. 세대 교체를 진행해야할 시점에 오히려 세대 교체를 뒤로 미뤄버린 셈이다.
재현되는 암흑기? 과연 마운드만 문제인가
지난 2년간 김성근 감독은 주전 중심, 그리고 베테랑 중심의 야구를 펼쳤다. ⓒ 한화 이글스
한화의 암흑기가 시작되었던 2000년대 후반을 떠올려보자. 당시 한화는 30대 중반의 야수들이 주축을 이루는 팀이었다. 1973년생 김민재가 2009시즌까지도 내야의 중심을 지켰고, 외야에는 조원우, 이영우, 강동우 등 1970년대 초반에 태어난 베테랑들이 존재했다. 안방 마스크는 1975년생 듀오 신경현과 이도형이 책임졌다. 내야, 외야, 그리고 안방까지 30대 중반의 선수들이 즐비한 상황. 현재의 한화와 상당히 흡사한 모습이었다.
아니, 차라리 그 때의 한화가 현재의 한화보다는 나았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2000년대 후반의 한화에는 ‘20대의’ 김태균이 있었고, 마찬가지로 외야와 내야에 20대 고동진과 한상훈이 주전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김태완을 비롯해 송광민, 오선진 등도 적지 않은 기회를 받으며 꾸준한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주전 몇 명에 대한 의존도 역시 현재보다는 양호한 편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한화는 어떤가. 30대 중반이 대다수인 주전 야수진, 그리고 그들에 대한 막대한 의존도, 여기에 씨가 마른 유망주까지. 감독이 ‘투수가 없다’, ‘15승 외국인투수가 필요하다’라고 외치는 사이, 야수진에는 다시 한 번 암흑기가 찾아들고 있다.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한화의 문제는 마운드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