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T 리포트
베이징 황금세대, 위기의 한국야구를 구하라
2017-03-17 금, 23:27
By
이도영
<작년 여름 봉황대기의 영웅으로 떠오른 안우진(휘문고3). 좋은 투구밸런스와 장신에서
구사하는 최고시속 150km대 강속구가 장점인 선수다.>
<사진제공-사진작가 유은아>
얼마 전 제 4회 WBC에서 우리나라 야구대표팀이 예선탈락 하는 모습에 많은 야구팬들이 실망을 금치 못했다. 투타 모두 총체적 난국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최근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MLB 진출자들을 배출하며 프로리그 수준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한국야구로서는 체면을 구긴 셈이다.
물론 단기전으로 치러지는 국제대회가 그 나라 야구역량의 모든 걸 보여준다 하기는 어렵다. 주축 선수들이 부상이나 소속 팀 상황으로 인해 대거 불참한 한국 팀으로선 더욱 그렇다. 허나 마이너리거들로 구성된 팀에도 고전하는 등 기대치를 훨씬 밑돌았던 대표 팀의 국제무대 경쟁력을 감안할 때 현주소를 냉정히 짚어봐야 한다.
현재 우리 대표 팀의 가장 큰 문제로는 국제전에서 통할만한 강력한 구위를 지닌 에이스의 부재를 들 수 있다. 그동안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이라는 걸출한 투수들을 보유한 덕에 올림픽과 WBC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으나 이번 대회에는 부상으로 인해 모두 불참, 확실한 투수가 부족하다는 약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한국야구도 언제까지 저 선수들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 새로운 영건들을 발굴할 시점이 됐으나 리그에 눈에 띄는 젊은 대형 투수가 많지 않아 관계자들의 고민이 깊다.
그런 면에서 올해 고교야구에 좋은 투수자원이 많은 건 굉장히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대표적인 선수들로는 리틀 시절부터 동 나이 대 최고의 에이스로 인정 받아온 양창섭(덕수고), 작년 봉황대기에서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른 안우진(휘문고) 그리고 수원야구 에이스 계보를 잇는 김민(유신고) 등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모두 최고시속 145km를 훌쩍 넘기는 강속구와 준수한 제구력, 변화구 구사능력 등을 겸비해 장래성을 인정받은 선수들이다.
그 밖에도 하준영(성남고), 최민준(경남고), 최건과 성동현(이하 장충고), 노윤상(제주고), 김유신(세광고), 박신지(경기고), 김동찬(덕수고), 이원빈(부산고), 최현일(서울고) 등 전도유망한 투수들이 아주 많다. 모두 하나같이 뛰어난 구위와 잠재력을 지녀 야구인들은 물론이고 야구팬들에게도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비단 투수진뿐만이 아니다. 투타만능 강백호, '헤라클레스' 이재원(이하 서울고), 호타준족 외야수 예진원, 거포 3루수 한동희(이하 경남고), 청대 안방마님 김형준(세광고), 대형유격수 배지환(경북고), '2016 파워 쇼케이스 월드클래식'에서 세계 2위를 차지한 유호산(경동고) 등 야수 중에도 눈에 띄는 걸출한 선수들이 많다.
<작년 청소년대표팀 2학년 멤버들. 좌로부터 양창섭, 강백호, 김형준, 김민, 하준영>
<사진제공-김민>
그렇다면 이와 같은 유망주 풍년에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
먼저 베이징올림픽과 2009년 제 2회 WBC 대회에서의 선전을 그 첫 번째 이유로 들 수 있다. 당시 대표 팀의 활약에 고무되어 우수한 신체능력을 지닌 초등학생들이 대거 야구에 입문했다는 일명 ‘베이징 세대’설.
실제로 올해 고교 2·3학년 선수 중에는 굉장히 뛰어난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을 지닌 선수들이 많다. 사실 토종 한국인 중에 타고난 운동선수는 상당히 제한적이라 타종목과 유망주 영입경쟁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제대회로 얻은 야구인기는 재능 있는 유소년들을 야구로 끌어오는데 매우 큰 힘이 됐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클럽야구의 활성화가 거론된다.
현 고교선수들이 야구를 시작할 당시 기존의 학원야구 이외에 리틀야구로 대표되는 클럽야구가 활성화되면서 취미로 야구를 즐기는 어린이들이 늘어났고, 자연스레 야구선수를 지망하게 된 유망주들이 많아졌다는 주장이다.
<자료1>
실제로 <자료1>을 살펴보면 클럽야구 활성화가 엘리트 선수층에도 긍정적 효과를 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임의 선정한 올해 고교 3학년 투수 33명의 야구입문 루트를 조사한 결과 초교출신은 19명, 리틀클럽 출신은 14명인 것으로 확인됐는데 예전 같으면 본인이 가진 재능을 확인하지 못한 채 야구를 시작조차 안했을 상당수의 선수들이 클럽야구를 통해 야구에 정식 입문하게 됐다고 유추 가능하다.
리틀야구로 대표되는 클럽야구 시스템의 정착이 엘리트 선수층 저변확대에도 기여한 것이다.
(참고로 클럽야구의 활성화 역시 시기적으로 2000년대 후반과 맞물린다.)
종합해보면 대표 팀의 국제대회 선전과 유소년 클럽야구의 활성화가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고 그 결실이 올해 고교 2·3학년 선수들이라 할 수 있다.
<베이징 황금세대는 야구소년들의 열정과 꿈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사진제공-박신지>
대형선수 기근으로 고민 중인 야구계는 모처럼 찾아온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오는 2020년에 열리는 도쿄올림픽에 대비하여 이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관리·육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재 한국야구에 부족한 정통파 투수와 대형슬러거를 키워내야 한다.
참고로 올해 고교 3학년 선수들이 내년 프로에 데뷔하면 2020년에 3년차가 된다. 빠르게 기량이 올라온다면 대표 팀에서도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KBO와 각 구단이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료2>
* 유소년 야구선수 기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등록 초교선수 및 리틀야구연맹 등록 리틀선수의 합
그렇다면 이 같은 야구유망주 호황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결론적으로 알 수 없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절벽의 시대가 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인 2001년생부터 연령별 인구 그래프가 급격히 꺾이기 시작한다.<자료2 참고>
기존까지 60만 명 이상을 유지해오던 각 연령별 인구가 40~50만 명대 내외로 내려간다. 그래서 전보다 유소년야구가 활성화 됐음에도 향후 그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만약 유소년야구 저변이 확대된 효과보다 절대 인구수 감소가 더 큰 영향을 준다면, 어쩌면 베이징 세대는 ‘한국야구의 마지막 불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야구를 떠나 인구감소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왠지 씁쓸한 대목이다.
결국 인구감소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야구가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선, 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스포츠영재들이 야구에 입문하게끔 새로운 야구열풍을 이끌어내야만 한다. 이를 위해 국제대회에서의 선전이 필수적이며 앞으로 우리야구의 주축이 될 베이징 세대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다.
우리 야구계에 많은 의미가 있는 베이징 황금세대.
그들은 과연 스타부재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야구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고 또 다른 야구열풍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더 나아가 고령화와 인구절벽이라는 위기 앞에선 한국 사회에 희망찬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관심과 기대가 공존하는 세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