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같은 팀 김씨 동무만큼 해준다면...
미친 타신투병리그에 오피에스 6할이 못되는 안습한 타격임에도 WAR에서 플러스를 기록한 타자가 있습니다. 그 타격의 안습함을 매울 정도로 수비에서 얼마나 잘해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겠죠. 기아팬이라면 모두 아시겠죠. 바로 김호령입니다.
아시다시피 하위라운드에서 뽑힌 선수들이 프로에서 살아남고 1군에서 주전으로 자리를 잡는 경우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당장 1년만에 방출되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바로 하위라운드의 슬픈 숙명입니다. 실제로 지명을 거부하고 심심찮게 대학을 가는 선수들도 있는 만큼, 구단에서도 로또나 다름없는 심정으로 별 기대를 안하고 편안하게 뽑습니다.
하지만, 이런 10라운드임에도 불구하고 김호령은 단 1년만에 1군에서 어느정도 자신의 위치를 다져두는데 성공했습니다. 빠른 발, 그 누구와도 견주어도 밀릴 것이 없는 수비는 부임하자마자 빠른 발을 가진 선수부터 찾았고, 수비를 중시하는 김기태 감독에게 자신의 장점을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죠. 아무래도 마캠에서 그야말로 훨훨 날라다닌 모양입니다. 보여준 것 없는 그저 흔한 신인임에도 기대치가 얼마나 높았으면, 야구대제전에서 김호령이 부상을 당하자 김기태 감독이 지인과 술을 마시다가 곧바로 일어나 그만 마셨을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기본적으로 코칭스태프의 주목을 받은 김호령이지만, 1군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건 그 외에도 중견수가 없는 팀 사정이 본인에게 기가막힌 호재로 작용했습니다. 우선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기행으로 주전 중견수가 빠진 자리에 마땅한 대체감도 없었구요. 물론 선구안을 갖추었고 수비에서 안정감도 있는 김원섭이라는 베테랑이 있었지만 전성기 시절에도 고질적인 체력적 부담을 안고 있었는데다가, 최근 2년간 별 기록도 없고 이제는 30대 후반으로 나이도 충분히 먹어 리빌딩을 하는 팀 입장에서는 주전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손이 가는 선택지는 아니었죠. 그나마 손에 꼽히던게 강력한 어깨와 인내심 넘치는 선구안으로 어필한 박준태 정도인데, 경쟁을 할 것도 없이 유리몸 기질을 보여주면서 1군에는 별로 있지도 못했고 다시 1군에 올라와 소중한 기회를 받아도 그마저도 매우 부진하며 스스로 기회를 날려먹었습니다. 김호령과 대비되어 너무나도 불안해보이는 중견수비는 덤이었구요.
그렇게 하나 둘 씩 후보들이 알아서 지워지다보니, 재활을 끝낸 김호령에게도 기회가 왔고, 어렵게 자신에게 온 기회를 김호령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쉬운 타구를 엎어지면서 잡는, 팬들의 눈을 속이는 호수프레가 아닌 정말로 안정감이 느껴지는 클래스 있는 수비. 쫄지 않고 자신있고 야무지게 휘두르는 타격은 김기태 감독 뿐만이 아니라 팬들에게도 강하게 어필했고, 앞서 말한 팀 사정까지 겹쳐지니 대주자나 대수비가 아닌 주전으로 1회부터 나오는 날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야무진 타격은 모든 신인이 그렇듯 타석이 쌓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한계를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2할 6~7푼 대로 나름 괜찮게 유지하던 타율이 1군 콜업 두 달을 넘기자 거짓말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기본적으로 김호령이 출루나 장타에서 두각을 들어내는 선수는 아니다보니 저렇게 타율이 폭망한 이상 OPS는 말할 것도 없었죠. 그렇게 하락세를 겪다가 본격적으로 여름에 접어들자 그 기울기의 폭은 더 커져서 단체로 미친 타신투병시대임에도 이제는 OPS가 6할이 체 안됐습니다.
정말로 팀이 외야에 새싹 하나 찾기 힘든 기아여서 살아남았던거지, 다른 팀이었으면 아무리 수비가 좋았어도 퓨처스 내려가서 시즌 끝날때까지 못올라왔을 겁니다. 올라왔더라도 철저하게 대수비나 대주자 용이었겠죠. 아무리 운 없는 부상으로 스프링캠프에서 빠졌고, 채력 분배가 힘든 중견수라는 포지션을 별다른 백업 없이 풀로 소화하는 신인인걸 생각해보더라도 김호령의 타격은 너무 비양심적이었고 아무리 김호령을 좋아하더라도 감내하기 힘들었습니다. 아무리 발이 빠르고, 수비가 좋아도 이런 타신투병시대에는 양심적으로 OPS 7할은 넘기고 나서 말해야죠.
이렇듯 타격에서의 문제가 너무 컸기 때문에 김호령은 지난 시즌 다른 선수들은 엄두도 못내는 천재적인 수비와 센스넘치는 주루를 보여주었음에도 여전히 주전이 아닌, 경쟁하는 위치에 섰습니다. 다행히 올해는 별다른 부상 없이 건강하게 스프링캠프를 치루고 있는데요, 작년 채력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144경기라는 장기레이스를 견딜 수 있는 채력을 키우는 것과 타격에서 한 걸음 더 성장하는 건 이번 시즌 주전 중견수 김호령을 보기 위해서는 필수조건입니다. 인터뷰를 보니 본인도 이런 점을 알고 있더라구요.
겉보기에는 타격 성적이 안좋아도 채력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어느정도 맞춰내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아직 타격 쪽에서 완전히 기대의 끈을 놓기는 일러보입니다. 딱 OPS 7할만 쳐 주면 주전경쟁이고 다 필요 없이 한큐에 상황 정리가 가능할 정도로 타격을 뺀 나머지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기도 하구요. 물론 현재 중견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오준혁의 포텐이 터져버리면 곤란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존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거든요.
안치홍, 김선빈이 돌아오고 박진두, 최원준, 황대인 등 나름 포텐넘치는 선수들이 있는 내야와는 다르게 외야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입니다. 김기태 감독의 기대를 받는 신인 이진영이 들어왔다지만 당장 써먹기는 힘들걸로 보이는 고졸 신인인데다가 아무래도 기본적으로 기대치가 떨어지는 하위라운드이구요. 딱히 돌아올 자원도 없고, 팀의 스카우트 전략을 보더라도 당장 상위 라운드에서 외야수를 뽑는 선택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결국 김호령을 위시로 한 오준혁, 노수광 등 기존자원의 강한 분발이 필요합니다. 누구보다도 더 훈련을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선수가 김호령인데, 꼭 그 노력이 결실이 맺어젔으면 좋겠네요.
박정수.
박정수는 프로에 와서 빠르게 성장한 투수 가운데 한명입니다. 고교 성적이 좋지 않음에도 가능성 하나만 보고 뽑혔는데, 박정수는 스카우트 팀의 기대에 부응해서는 1년만에 리그 전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사이드암 유망주로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1년만에 평가가 달라지게 된 건 역시 직구구속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최고 144를 기록한 직구는 사이드암인걸 생각하지 않아도 1년차 치고는 매우 빠른 편이고, 이후 체중증가로 인해 구속향상도 충분히 노려볼 만 하기 때문에 어쩌면 기아는 150의 광속 사이드암을 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본인도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체중증가를 꺼리지 않은 편이기에 더욱 기대해 볼 만 한 것 같네요.
또 하나의 좋은 점이라면 역시 박정수 하면 떠올리는, 제대로 떨어지기만 한다면 확실하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체인지업이라는 주무기가 있다는 점. 일반적인 변화구와는 다르게 좌타자와 우타자 모두 가리지 않고 승부구로 사용할 수 있는 체인지업은, 프로 1년차 신인으로서는 정말 가지기 힘든 좋은 변화구입니다. 실제로 박정수는 이 체인지업을 위닝샷으로 활용하는데, 연차가 쌓이고 체중이 늘어나면서 구속이 더 올라간다면 직구와의 구속차를 이용한 눈속임을 이용하는 구질의 특성상 그 효과가 더 극대화 될 수 있습니다. 빠른 직구와 떨어지는 체인지업이라는 볼배합은 정석적이면서도 매우 효과적이죠.
단점이라면 제구가 아직 잡히지 않는 선수라는 것. 사이드암의 특성상 높은 비율로 선수를 맞추는 건 어쩔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1군이나 퓨처스나 박정수에게 제구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물론 본인도 인터뷰에서 밝혔듯, 2~3년의 시간을 두고 1군을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이도 어리다 보니 그렇게 부정적인 요소는 아닙니다만, 1군에서 꾸준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구의 꾸준함이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무엇보다도 박정수의 주무기인 체인지업은 제구가 되지 않으면 그대로 장타를 허용할 수 있는 공이고, 실제로 보이는 무브먼트와는 다르게 체인지업의 피안타율과 피장타율은 매우 높은 편입니다. 물론 박정수의 체인지업은 타자의 배트를 이끌어 내는대는 상당히 위력적이여서 수준급 마무리투수의 위닝샷과 비교되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높은 스윙율로 스윙을 유도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만큼 제대로 떨어지지 않으면 장타를 허용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외부적인 요소로 장타를 억제하기에는 기아의 챔피언스 필드는 드넓지 않고, 수비 또한 2년 뒤까지 좋다고 단언하기는 많이 힘들구요. 또 반드시 체중을 늘려야 할 만큼 가날픈 몸이라는것도 지적요소죠.
하지만 제구가 좀 불안하다고, 체인지업이 자주 몰린다고 하더라도 박정수는 변함없는 리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사이드암 유망주입니다. 다만 아직 1군에서 보기는 여러가지 면에서 부족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고, 아직은 더 다듬어야 할 유망주인건 분명하죠. 그런 점에서 본다면 박정수의 적절한 군입대는 신의 한 수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우규민이 1군에서 약간 아쉬운 성적을 내다가 군입대 후 퓨처스에서 제대로 폭발하면서 15승 무패라는 역대급 성적을 냈고, 팀에 돌아와서 이제는 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하나로 자리잡았는데, 박정수 또한 경찰청 선배 우규민의 길을 밟았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