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1일 15시 25분 37초 메이저리그 21번째 퍼펙트 투수가 탄생했다. 퍼펙트 투수로 잘 알려진 KIA 외국인 투수 필립 험버의 대기록이다.
필립 험버를 대변하는 2012년 4월 21일의 퍼펙트 경기와 그 1년 후, 1회도 채우지 못한 채 강판된 험버 인생 최악의 경기를 비교함으로써 무엇이 그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었는지, 퍼펙트 피처 필립 험버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필립 험버 퍼펙트 경기
먼저 험버의 퍼펙트 경기를 감상해보자. 삼진 잡는 공은 어떤 구종인지 유심히 살펴보자.
험버는 퍼펙트 경기 달성 후 당시 포수였던 A.J. 피어진스키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1].
" A.J. 피어진스키가 훌륭하게 해냈다. 외야에서 2개 정도 멋진 수비가 나왔다. 정말 대단했다. 뭘 말해야 할지 도대체 모르겠다. 필 험버라는 이름이 퍼펙트 리스트에 올라갈 줄은 몰랐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퍼펙트를 달성한 날 험버는 포수 A.J. 피어진스키를 전적으로 신뢰했고 그의 볼 배합이 좋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퍼펙트 경기를 지켜 봐야 했던 적장 시애틀 매리너스 감독 에릭 웨지는 험버의 퍼펙트 경기를 칭찬했고 더불어 포수 A.J. 피어진스키가 정말 훌륭한 경기를 해냈다며 극찬했다[2].
험버는 압도적인 구위를 가진 선수는 아니다. 하지만 이날 그의 변화구는 놀라울 정도였다. 140km/h (87마일) 체인지업이 포크볼 떨어지듯이 떨어졌고 슬라이더와 커브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현란한 변화구를 구사했다. 험버의 슬라이더 중에는 날카로운 하드 슬라이더와 커브보다 짧게 떨어지는 84마일 (135km) 슬러브도 있었는데 거기에 낙차 큰 129km/h (80마일) 커브까지 더해져 타자들을 힘들게 했다. 그가 보여준 패스트볼은 싱커에 가까웠다.
험버가 퍼펙트를 달성한 날 구위, 볼 배합, 제구력이 뒷받침되긴 했지만, 시애틀 타선이 험버의 실투를 제대로 공략해내지 못했고 잘 맞은 타구가 수비 근처로 가는 등 운까지 따라주었다. 실책을 범할만한 어려운 타구가 있었는데 야수들까지 완벽하게 그를 도왔다. 특히 외야에서 어려운 타구를 잘 잡아 그의 퍼펙트 경기를 지켜주었다.
퍼펙트나 노히트 경기를 달성하는데 있어 수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014년 클레이튼 커쇼는 노히트 경기를 달성했다. 그 경기에서 헨리 라미레즈가 더 뛰어난 수비수였다면 노히트가 아니라 퍼펙트 경기를 기록했을지도 모른다. 워싱턴 소속 조던 짐머맨은 9회 2아웃 상황에서 안타성 타구를 맞았으나 좌익수의 멋진 캐치로 노히트 경기를 달성할 수 있었다.
필립 험버 최악의 경기 (0.1이닝 8실점)
퍼펙트 경기와 최악의 경기 다른 점이 무엇일까? 그의 경기를 감상해보자.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휴스턴으로 팀을 옮긴 험버는 퍼펙트를 달성한 날로부터 1년 후, 미처 1회를 매조지하지 못하고 아웃카운트 하나만 기록한 채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험버는 0.1이닝 동안 8안타 1홈런 8실점을 기록했다. 최악의 경기 이후 평균 자책점은 2.89에서 6.63 으로 치솟았고 그렇게 한번 올라간 평균자책점은 떨어질지 모르고 9점대까지 치솟았다. 험버는 선발에서 불펜으로 옮겼지만 불펜 평균 자책점 6.43를 기록하며 좋지 못했다.
최악의 경기 후 험버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투구 조절하는 것이 힘들었다. 클리블랜드는 1회부터 달려들었다. 공을 던지기가 무섭게 강하게 때려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좋은 공을 몇 개 던졌지만 그마저도 안타로 이어졌다. 오늘 정말 힘들었다."
필립 험버의 공이 몰리자 클리블랜드 타자들은 여지없이 안타를 몰아쳤고 필립 험버의 인터뷰처럼 코스가 좋았고 예리하게 잘 던진 공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안타를 맞아 나갔다. 필립 험버가 퍼펙트 하던 날 모든 운이 그에게 다 쏠렸다면 이 경기에서는 지독하게 운 없는 경기를 치렀다.
퍼펙트 경기와 최악의 경기를 비교하기 전에 험버가 어떤 공을 던지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포심 패스트볼
험버의 패스트볼은 146~148km/h (91~92마일) 사이에 형성된다. 그가 불펜으로 나올 때는 최고 구속 154.8km/h (96.2마일)까지 던지고 선발로 나올 때는 최고 구속 150~151km/h (93~94마일) 정도 던진다. 험버의 패스트볼은 메이저리그에서 마이너스 구종이었고 그의 구종 중에서 가장 낮은 가치를 기록했다.
싱커
험버의 싱커는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과 비슷하거나 약 1마일 정도 느리다. 그의 싱커는 구속과 움직임이 좋은 편이라 한국 무대에서 빛날 수 있는 구종이다.
체인지업
험버는 매우 좋은 체인지업을 던진다. 138~142km/h (86~88마일)로 날아오던 체인지업이 포크볼처럼 급격하게 떨어진다. 그의 체인지업이 소위 '긁히는' 날은 사이영위너인 '킹'펠릭스 못지 않게 기막힌 체인지업을 던진다. 왼손 타자 상대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구종이다. 험버의 체인지업은 오른손 타자 상대로 성적이 더 좋았다. 그의 체인지업은 오른손 타자에게 피안타율 .226를 기록했고 왼손 타자에게 피안타율 .270를 기록했다.
슬라이더
험버는 크게 2가지 슬라이더를 던진다. 그의 슬라이더는 슬러브와 커터로 분류할 수 있다. 그의 슬러브는 135km/h (84마일)에 형성되고 보통 슬라이더보다 더 많이 떨어진다. 오른손 타자를 상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이다. 그가 슬라이더를 낮게 제구만 할 수 있다면 많은 삼진을 잡을 수 있는 공이다. 142km/h(88마일)정도로 형성되는 커터도 구사한다. 험버의 슬라이더는 한국 무대에서 까다로운 구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커브
험버의 커브는 평균 129km/h (80마일)이고 116km/h (72마일)까지 구속을 낮출 수 있다. 험버의 커브는 상당히 뛰어나다. 특히 수평 움직임이 뛰어나 오른손 타자에게 유용하게 쓸 수 있다. 특히 오른손 타자는 볼카운트가 불리해진다면 바깥쪽으로 휘어나가는 험버의 커브를 조심해야 한다.
퍼펙트 경기와 최악의 경기가 어떻게 다른지 PITCH/fx를 통해 구위부터 살펴보자.
PITCHf/x 좌표계 (포수 시점)
퍼펙트 경기와 최악의 경기, 이 두 경기를 구위 면에서 비교해보면 큰 차이는 없다. 최악의 경기에서 패스트볼이 0.6km/h (0.4마일) 느릴 뿐 수직 움직임에서 보듯이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의 구위는 오히려 더 좋고 더 잘 떨어졌다. 최악의 경기에서 구위가 나쁘지 않았다면 어떤 부분이 차이가 났을까?
구종 비율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험버는 퍼펙트 경기에서 패스트볼을 40% 비율로 던졌지만, 최악의 경기에서 패스트볼 비율은 62%를 기록했다. 그의 패스트볼은 메이저리그 수준에서 큰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볼 카운트가 불리할 때 패스트볼을 주로 던졌다. 슬라이더의 비율은 6.9%(고작 2구)를 기록했다. 퍼펙트 경기에서 보여준 슬라이더 비율 34.74%와 큰 차이를 보였다. 퍼펙트 경기에서는 패를 감추었다면 최악의 경기에서는 뻔한 패만 보여준 셈이다.
퍼펙트 경기에서는 슬라이더로 9개의 삼진 중 6개의 삼진을 잡을 정도로 위력을 떨쳤다. 하지만 최악의 경기에서 슬라이더의 비중이 줄었고 볼 배합 또한 단순했다. 험버는 경기 초반 난타당하며 완급조절 투구를 하지 못했고 패스트볼 위주의 경기를 펼쳤던 점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험버는 이날 실투가 많았고 불운까지 겹쳐 최악의 경기가 되고 말았다.
퍼펙트 경기와 최악의 경기에서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두 경기 모두 왼손 타자를 7명이나 배치했다. 필립 험버에게 최악의 경기를 가져다준 클리블랜드는 험버를 상대로 전원 왼손 타자를 기용하기도 했다. 필립 험버를 상대하는 팀은 적어도 5명 이상의 왼손 타자를 기용했고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필립 험버 피안타율 변화, L = 왼손 타자 피안타율, R = 오른손 타자 피안타율
기록 참조: baseball-reference.com
2011년 험버의 왼손 타자 피안타율은 0.266에서 2012년 0.300로 올라갔으며 2013년에는 0.426까지 오르며 왼손 타자에게 큰 약점을 보였다. 필립 험버는 통산 오른손 타자보다 1.3배 더 많은 왼손 타자를 상대했다. 험버의 오른손 타자 상대 통산 타율은 0.229로 8, 9번 타자 수준과 상대했다면 왼손 타자 상대 통산 타율은 .303로 푸이그, 버스터 포지와 같은 3, 4번 타자를 상대한 것이다.
험버의 패스트볼은 가라앉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부터 홈런 공장장이 되고 말았다. 100이닝 이상 소화한 투수 중 9이닝당 홈런 개수가 HR/9 = 2.03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2위에 올랐다. 4.5이닝 기준으로 1개를 맞은 셈이다. 2012년은 홈런 기록은 화려하다. 홈런 4개를 맞았던 경기가 1번, 홈런 3개를 맞았던 경기가 2번, 홈런 2개를 맞았던 경기가 2번이었다. 험버는 홈런을 맞지 않았던 12경기에서 1.93 ERA를 기록했고 홈런을 맞았던 14경기에서 10.2 ERA를 기록했다. 두 기록이 차이가 너무 극단적이다.
필립 험버 HR/9(녹색), 리그 평균(파란색), 기록 출처: fangraphs.com
2015년 전망
험버의 패스트볼은 메이저리그 평균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 무대에서 평속 146km/h에 달하는 그의 패스트볼은 평균 이상의 가치를 가질 것이다. 험버는 변화구 구위가 매우 뛰어나고 볼넷 수치가 마이너리그 BB/9 = 2.8, 메이저리그 BB/9 = 3.1로 준수해 한국 무대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 홈런 문제 역시 메이저리그와 달리 한국 무대에서 필립 험버에게 큰 장애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2014년과 같은 타고투저가 계속된다면 예상외로 고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14년 험버는 스프링 캠프에서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구위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험버의 구위로만 본다면 한국 무대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험버와 KIA 포수진이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한국 무대에서 정상급 투수로 거듭날 가능성도 크다고 판단된다. 메이저리그 퍼펙트 피처 출신 험버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첫째도 적응, 둘째도 적응, 셋째도 적응이다. 그의 제구력만 예년 수준을 유지한다면 성공적인 한 해를 보낼 것으로 전망된다.
양승준 칼럼니스트
Reference
[1] “The Humber Game: Perfect win for White Sox”, Josh Liebeskind, MLB.com, Apr 21, 2014,
http://mlb.mlb.com/mlb/gameday/index.jsp?gid=2012_04_21_chamlb_seamlb_1#gid=2012_04_21_chamlb_seamlb_1&mode=recap&c_id=cws
[2] “Mariners dealt perfect hand they didn't want”, By Doug Miller, MLB.com, Apr 21, 2014,
http://mlb.mlb.com/mlb/gameday/index.jsp?gid=2012_04_21_chamlb_seamlb_1#gid=2012_04_21_chamlb_seamlb_1&mode=recap&c_id=sea
[3] ”What is PITCHF/x?”, Fangraphs,
http://www.fangraphs.com/library/misc/pitch-fx/
[4] “마그누스 효과, 야구공의 회전과 움직임”, BaseBallGEN, Aug 4, 2014,
http://baseballgen.com/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