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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강 '야구 천재' 윌리 메이스, 영원히 기억될 이유

2024-06-30 일, 23:18 By 케이비리포트

 

[메이저리그] 하늘의 별이 된 가장 위대했던 자이언츠 맨, 윌리 메이스의 발자취

 

▲  향년 93세로 세상을 떠난 윌리 메이스(출처: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공식 SNS).
ⓒ 샌프란시스코자이언츠


 
현재 이정후의 소속 구단인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영구결번 레전드이자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외야수로 꼽히는 윌리 메이스가 지난 18일(현지 시각) 향년 93세로 세상을 떠났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은 '메이스가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는 내용의 성명문을 발표하면서 고인을 추모했고 전현직 메이저리그 선수를 비롯한 메이저리그 관계자들과 전 세계의 야구팬들에게까지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당초 샌프란시스코 구단은 윌리 메이스가 니그로 리그에서 데뷔했던 팀인 앨라배마 주 버밍햄 블랙바론스의 홈구장에서 20일(현지시간 기준) 니그로 리그 헌정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지난 17일, 메이스의 현장 참석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바로 다음날 결국 사망 소식이 전해지며 안타까움을 더했다.
 
1931년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태어난 윌리 메이스는 1948년부터 니그로리그에서 뛰기 시작했다. 이후 재키 로빈슨이 메이저리그의 인종 차별의 장벽을 허물면서 1951년 뉴욕 자이언츠(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입단했고 신인왕까지 수상한다.
 
그러나 2년차 시즌인 1952년, 메이스는 한국 전쟁으로 인해 군복무를 해야 했고 1954시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전역하게 되면서 메이저리그 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다.
 
공백 탓인지 복귀 첫 시즌 초반엔 부진했지만 이후 맹타를 휘두르기 시작하며 .345 .411 .667(타출장) 41홈런 110타점 wRC+(조정 득점 창조력) 173 b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10.5라는 엄청난 성적을 내면서 생애 첫 MVP를 수상했다.

▲  윌리 메이스를 상징하는 더 캐치(출처: MLB카툰- 윌리 메이스편).
ⓒ 케이비리포트


 
그리고 월드시리즈 무대에서도 시리즈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는 일명 'The Catch'라고 불리는 엄청난 호수비(외야 가장 먼 곳인 130m 지점에서 수비 성공)를 보였다. 정규 시즌 최다승(111승) 팀이었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현 가디언스)를 상대로 공수에서 맹활약한 메이스는 뉴욕 자이언츠의 마지막 우승을 이끌었다.
 
메이스는 이후 35세 시즌인 1966년까지 무려 13년간의 전성기를 이어나가면서 이 기간 동안 MVP 2회, 타격왕 1회, 도루왕 4회, 홈런왕 4회를 수상했고 장타율, OPS, wRC+ 부문 1위 역시도 여러 차례 차지하면서 리그 최고 타자로 군림했다.
 
이 기간 중 메이스의 연평균 성적은 타/출/장 .315 .390 .601 40홈런 109타점 21도루 wRC+ 164 bWAR 9.5인데 21세기 최고 타자로 평가받고 있는 푸홀스의 성적(.331 .426 .624 41홈런 118타점 wRC+ 169 bWAR 8.2)과 비견할만 하고 수비 부담이 큰 중견수 포지션을 소화했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역사상 가장 뛰어난 야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메이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끄는 결정적인 호수비(더 캐치)를 포함해서 골드글러브 12년 연속 수상에 성공했을 정도로 중견수로서도 역대급 수비력을 자랑했다. 현재까지도 피츠버그 레전드 외야수 로베르토 클레멘테와 함께 역대 골드글러브 최다 수상자로 남아있으며 이러한 엄청난 수비력 덕분에 메이스는 외야수로는 역대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통산 18.2의 수비 bWAR을 기록했다.

메이스는 10이상의 bWAR을 6시즌이나 기록했을 뿐 아니라 bWAR 시즌 1위에도 역사상 가장 많은 10번(베이브 루스와 동률)이나 올랐을 정도로 역대 최고의 공수겸장 5툴 플레이어로서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다.
 
1967년을 기점으로 메이스의 전성기는 끝났지만 이후로도 은퇴하기까지 매 시즌 0.780 이상의 OPS를 기록할 정도로 여전히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계속해서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1972년에는 메츠로 트레이드 되면서 자신이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시작했던 뉴욕으로 돌아왔고 은퇴 시즌이었던 1973시즌까지도 올스타에 선정됐다. 전역 이후 복귀 시즌부터 무려 20년 연속 올스타 선정과 24회 올스타전 출장(당시에는 올스타전이 두 경기로 진행되기도 함)이라는 역대 2위에 해당하는 대기록 달성과 함께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던 윌리 메이스(출처: 샌프란시스코 구단 SNS).
ⓒ 샌프란시스코자이언츠


 
메이스는 통산 .301 .384 .557 3293안타 660홈런(역대 6위) 1909타점 338도루 wRC+ 154 bWAR 156.2(역대 3위)의 기록과 함께 역사상 유일한 3000안타-500홈런-300도루-골드글러브 10회 수상자로 이름을 남겼다. 베이브 루스에 필적할만큼 위대한 선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명예의 전당에도 95%라는 높은 득표율과 함께 1979년 첫 투표에 바로 입성했다.
 
은퇴 이후 메이스는 자신의 등번호 24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한 두 팀, 뉴욕 메츠의 타격 보조 코치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단장 특별 보좌 등으로 야구계에서 일을 하면서도 미디어에도 활발하게 모습을 비췄다.
 
평소 인품도 훌륭하다고 알려진 메이스는 거리의 아이들과도 공놀이를 종종 즐겼을 정도로 주변 사람들을 친절히 대했고 팬들로부터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비록 메이스는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회자되는 기적같은 플레이와 끈기 그리고 셀 수 없는 업적들은 야구팬들 곁에 남아서 윌리 메이스라는 이름을 영원히 기억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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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참조: MLB.com, 베이스볼서번트, 팬그래프, 케이비리포트(kbreport)]

덧붙이는 글 | (글: 이종석 /감수: 민상현 기자) 스포츠 객원기자 지원하기[ kbr@kbrepor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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